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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 다만 하나의 빛깔로
백지에 동그라미 그리면 그 안에 내 세상이 있다
조금 비뚤어진 원 안에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것은 하나의 빛깔로 움터오는 새싹인 아직 이름없는 나의 세상
마흔 넘어도 두려움 없이 넓은 공간에 있을 수 없어 작은 동그라미 그리고 들어서면 아 드디어 여린 뿌리를 내리고 다만 하나의 빛깔로 떠오르는 나의 세상
혼탁한 거미줄과 그 뒤의 안개를 거두어 내고 가파른 물길 같은 어둠을 헤엄쳐온 발 끝에 새벽 5시의 이슬이 터지는 순간에 접하는 나의 세상
살갗을 찢는 포만의 욕구 자생하여 날개를 젖던 앓던 것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전신으로 한뼘씩 줄여 동그라미 그리면 동그라미 그리면 한점 점으로 찍히는 단호한 집중
아직 이름없는 새싹인 자궁 속의 태아처럼 이제 분명한 성(性)으로 자리잡는 나의 세상이 있다
다만 하나의 빛깔로, 문학사상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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