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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부재(不在)
새털구름 밑으로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고 고공(高空)으로 올라간 나의 장형(長兄)은 지금 윤회(輪回)를 빠져나가고 있다. 아우는 무단 가출하고 없다. 우리 집은 빈 집이다. 가랭이가 찢어지려 하는 이 자리가 바로 내 자리다. 아버지 기일(忌日)이 가끔 우리를 불러모을 따름 무영탑(無影塔) 속에서 올라오는 촛불. 부재(不在)가 우리를 있게 했다.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 시인 / 비오는 날, 유년(幼年)의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줄기로 비 맞는 유년(幼年) 부잣집 아이들은 식모가 벌써 데려가고 일 나간 우리 엄니는 오지 않았다 치(齒) 떨리는 운동장 끝 어린 느티나무 몸 속에선 이상한 저음(低音)이 우우 우는데 달 저물어오고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빗줄기, 보이지 않는 우리 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기어가는 것 같고 문고리에 매달린 동생들 이름 부르며 두 손에 고무신 꼭 들고 까마득한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었다
그 운동장으로부터 20년 후 이제 다른 생애(生涯)에 도달하여 아내 얻고 두 아이들과 노모와 생활수준(生活水準) 중하(中下), 월수(月收) 40여만(萬) 원, 종교 무(無), 취미 바둑, 정치의식(政治意識) 중좌(中左), 학력 대(大)퇴 의 어물쩡한 30대 어색한 나이로 출판사 근처에나 얼쩡거리며 사람들 만나고 최근 김영삼씨 동향이 어떻고, 미국 간 김대중씨가 어떻고, 잡담(雜談)과, 짜장면과, 연거푸 하루 석 잔의 커피와, 결국 이렇게 이렇게 물들어가는구나 하는 절망감과, 현장 들어간 후배의 경멸어린 눈빛 그런 작은 표정에도 쉽게 자존심 상해 하는 어물쩡한 30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색한 나이로 남의 사무실을 빠져나오다가 거리에서 느닷없이 기습해오는 여름비― 소년은 비 맞으면서 비닐 우산을 팔고 비닐 우산 아래서 비닐 우산과 함께 더 큰 줄기로 비 맞는 성년(成年) 그 비닐 우산 속으로 20년 전 어린 느티나무가 들어와 후두둑 후두둑 몸 떨며 이상한 저음(低音)으로 울고 나는 여전히 저문 운동장 가에 혼자 남아 있고
餠煎こすシ觀壙 봄 ―나무에로, 민음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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