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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승호 시인 / 마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7.

최승호 시인 / 마을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 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펑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 가는 아이에게

펑화로운 사람을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 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 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 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밤엔 장자(莊子)를 읽으리라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몸

 

 

끙끙 앓는 하나님

누구보다도 당신이 불쌍합니다

우리가 암덩어리가 아니어야

당신 몸이 거뜬할 텐데

 

피둥피둥 회충떼처럼 불어나며

이리저리 힘차게 회오리치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벌건 욕망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서울대학교와 同 대학원 졸업.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 『그로테스크』, 『모래인간』 등과 산문집으로 『황금털 사자』, 『달마의 침묵』, 『물렁물렁한 책』 등과 그림책으로 『누가 웃었니?』, 『이상한 집』이 있음. 1982년 '오늘의 작가상', 1985년 '김수영문학상', 1990년 '이산문학상', 2000년 '대산문학상' 수상.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