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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 시인 / 내 시(詩)는 시의 그림자뿐이네
시(詩)와 밤새 그짓을 하고 지쳐서 허적허적 걸어나가는 새벽이 마냥 없는 나라로 가서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 무슨 힘이 잉잉거리는 벌떼처럼 아침 꽃들을 찬란하게 하고 무엇이 꽃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지 어째서 얼굴 붉은 길을 걸어 말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고 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나서 어떤 나무 아래 서 있는지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달밤의 어릿광대
여름 뜰에서 다알리아가 되어 검붉은 꽃잎이 어둠으로 퍼지며 진한 설움을 동서로 남북으로 전할 적에 나는 무엇을 집착하고 있느냐 원고료 일만원의 의미밖에 없는, 그래서 마누라에게 핀잔이나 받는 시(詩)이냐! 시(詩)이냐! 여름밤의 벌레들이 제 설움에 시달려 울어대는 작은 마당에서 나의 설움을 우는 나는 독백(獨白)의 광대냐 멀리 남도에서 올라와 보아 주는 이 없는 춤을 추고 있는 달밤의 어릿광대냐 어릿광대의 시이냐.
작은 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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