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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인 /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
노래를 하련다. 그늘 같은 노래는 오후의 이마를 식히고 이파리 같은 노래가 파닥여 갈채가 되는 노래를 하련다. 반듯하다고 자부하는 저 거리가 기운 제 그림자에 놀라게 혓바닥에 올려놓은 수은이 떨어지게 노래에 노래를 더하여 노래를 하련다. 그간의 노래는 소음이었다며 노래를 하련다. 그간의 노래는 음정박자를 놓친 노래였다고 노래를 하련다. 내 노래를 피해 구름이 멀리 돌아 흘러가도 강물이 흠칫 놀라도 쇠창살을 물어뜯고 담을 허물어뜨리는 노래를 하련다. 흡혈빨판을 가진 노래, 치명적인 노래라도 노래를 하련다. 노래로 가득 찬 세상이면 더할 나위없는 노래의 한 시절, 노래로 마음의 결을 골라 투명한 사람들이 이룬 수정의 나라, 노래를 하련다. 노래를 아니 할 수도 없다. 노래를 하련다.
연애에 실패해 트럼펫을 밤하늘로 불어 올리다가 끝내 자살한 딴따라 친구가 부른 노래를 내가 부른다. 여자 한 명에게 버림 받은 것도 죄라며 자살한 친구도 있는데 저렇게 큰 죄를 짓고도 자살하지 않는 세월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죄로 물든 나도 자살하지 못한 비겁이 아파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노래 속에 부활한 친구가 기억의 트럼펫을 밤하늘로 불어 올리는데 이구동성으로 친구의 노래 따라 부르며 나부끼던 자지러질듯이 핀 아카시아 꽃이 그리운데 내 죄의 뺨을 꼬집어대며 거리에 바람이 부는데 내 삶이란 순리를 역행하고 우주의 질서를 역행하듯 막무가내였는데 부를수록 더 슬퍼지는 노래, 친구가 부른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내 노래가 내 죄의 뺨을 찰싹 찰싹 때리면서 돌아와도 노래를 부른다. 친구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도 죄라서 죄 중의 큰 죄라서 노래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마음이 서걱거려 내내 잠들 수 없다.
어머니가 양 언니라 부르던 오동나무 집 이모 막걸리 팔면서 노래로 살았다. 재혼도 마다하고 오동나무 술잔 위로 보랏빛 꽃잎 뚝뚝 지는 날 남정네 살 냄새 그리울 텐데 전쟁에 나가 세상을 버린 젊은 남편이 무척 보고 싶다며 노래나 불렀다. 딴 사람에게 정 쏟으면 유복자 코 흘리게 아들 소홀히 한다며 차라리 남편이 좋아했던 노래나 불렀다. 오동나무 꽃 유난히 환한 밤에는 오동나무 꽃을 등 삼아 꿈속의 남편을 찾아갔다 왔는지 몰라도 오동나무 이모 수절의 과부로 노래나 불렀다. 나이 들어도 예쁜 몸매와 얼굴에 사내들 슬슬 다가가도 이모의 노래 속에 한 발자국도 발 들여놓지 못했다. 오동나무 집 이모는 노래로 모든 것을 물리치고 노래 속에서 잠들곤 했다. 지금은 애지중지 키운 아들 출세해도 며느리에 빠져 오동나무 이모를 나 몰라라 하며 팽개쳤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이민 갔다는 소문도 있는데 아직도 막걸리 잔에 오동나무 꽃잎 뚝뚝 질 때 오동나무 집 이모 노래를 하려나.
삶도 완창을 위한 노래, 몇 세기가 지나야 나는 완창에 이를까. 완창에 이른 자 아직 없는지 어떤 노래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끝내 미완에 이르더라도 그믐에도 나의 노래는 계속 되어야 한다. 노래를 부르다가 보면 끊길 수밖에 없고 노래를 방해하는 무수한 빗방울 소리로 나의 노래는 지쳤을 텐데도 노래를 위로하는 것이 노래일 수밖에 없다. 득음을 위해 완창을 위해 나의 노래는 노래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비포장의 세월 위에서 흔들릴 때마다 멀미하며 게워내는 것도 아직은 가슴으로 다 삭이지 못한 삶이란 노래, 완창을 위해 노래의 고삐를 옛날 아버지처럼 다시 한 번 꽉 조인다. 노래하던 아버지의 천년 고집을 닮아간다.
금남로에 다시 그 날이 오고 가버린 이름이 꽃잎으로 분분이 휘날린다. 이루지 못한 민주화의 꿈 이루지 못한 금남로의 꿈이 고립된 채 짓밟히고 총성이 다슬기처럼 귀에 박혀 처절하게 관에 누운 그날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그 때가 그래도 잉걸불의 가슴이었고 가장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노래하던 날이었으니 늦었지만 그 노래를 다시 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며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부른다. 다시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 반드시 불러야 될 노래를
하나 노래여 난 너를 아주 천천히 부르련다. 오랜 갈증이 있었으나 너를 다 부르면 나의 한 생이 다 지나갈 지도 모른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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