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지우 시인 / 수기(手旗)를 흔들며
일간지(日刊紙)에 콩나물을 싸들고 아내가 우리 생애(生涯)의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온다
가난한 거주지의 긴 주소를 찾아 (그래 그래 주소가 길면 가난한 사람이다) 일기예보를 보는 식구들에게 길림성(吉林省) 옛 갈대밭에서 입에 손 모으고 호명(呼名)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곳에도 흰 깃발이 오르고 다가갈 수 없는 대안(對岸)으로 물은 흘러도 영원히 닿지 않는 연해주에서 신림(新林) 산육동(山六洞)까지 보이지 않는 눈․비․바람의 보이는 선(線)을 따라 흰 깃발이 펄럭인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곳에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고 외몽고로 또다시 유민(流民)들이 떠나간다
떠나고 없는 빈 등고선에 내리는 흰눈 을 아내가 마당에서 대신 맞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 시인 / 수평선(水平線)
1
물 냄새를 맡은 낙타, 울음, 내가 더 목마르다. 이 괴로움 식혀다오. 네 코에 닿는 수평선(水平線)을 나는 볼 수가 없다.
2
시리아 사막에 떨어지는, 식은 석양. 낙타가 긴 목을 늘어뜨려 붉은 천도(天桃)를 따먹는다. 비단 길이여, 욕망이 길을 만들어놓았구나. 끝없어라, 끝없어라. 나로부터 갈래갈래 뻗어나갔다가 내 등뒤에 어느새 와 있는 이 길은.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천양희 시인 / 이 하루 외 1편 (0) | 2020.01.22 |
|---|---|
| 나태주 시인 / 겨울행(行) 외 1편 (0) | 2020.01.22 |
| 신경림 시인 / 농무(農舞) 외 2편 (0) | 2020.01.21 |
| 김왕노 시인 /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 (0) | 2020.01.21 |
| 최승호 시인 / 변기 외 1편 (0) | 202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