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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수기(手旗)를 흔들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2.

황지우 시인 / 수기(手旗)를 흔들며

 

 

일간지(日刊紙)에 콩나물을 싸들고

아내가 우리 생애(生涯)의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온다

 

가난한 거주지의 긴 주소를 찾아

(그래 그래 주소가 길면 가난한 사람이다)

일기예보를 보는 식구들에게

길림성(吉林省) 옛 갈대밭에서

입에 손 모으고 호명(呼名)하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곳에도 흰 깃발이 오르고

다가갈 수 없는 대안(對岸)으로

물은 흘러도 영원히 닿지 않는

연해주에서 신림(新林) 산육동(山六洞)까지

보이지 않는 눈․비․바람의

보이는 선(線)을 따라

흰 깃발이 펄럭인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고

그곳에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고

외몽고로 또다시 유민(流民)들이 떠나간다

 

떠나고 없는 빈

등고선에 내리는 흰눈

을 아내가 마당에서

대신 맞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황지우 시인 / 수평선(水平線)

 

 

1

 

물 냄새를 맡은 낙타, 울음,

내가 더 목마르다.

이 괴로움 식혀다오. 네 코에 닿는

수평선(水平線)을 나는 볼 수가 없다.

 

2

 

시리아 사막에 떨어지는, 식은 석양.

낙타가 긴 목을 늘어뜨려

붉은 천도(天桃)를 따먹는다.

비단 길이여,

욕망이 길을 만들어놓았구나.

끝없어라, 끝없어라.

나로부터 갈래갈래 뻗어나갔다가

내 등뒤에 어느새 와 있는 이 길은.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987

 

 


 

 

황지우(黃芝雨, 1952 ~ ) 시인

본명은 황재우.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당하였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