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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천양희 시인 / 이 하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2.

천양희 시인 / 이 하루

 

 

정처없다 말하는 이 있어

자갈 물고 물구나무서니

편하군 편하군

세상 거꾸로 보니 편하다

말하는 이 있어

하루종일

숨통 죄다 지우고

물구나무선다

 

높은 것 위의 더 높은 것

높은 것들 사이에서 물구나무서서

거꾸로 피를 세우는 자

피를 위해 피 말리는 자

당기고 조이고 피를 흘리는군

 

높은 것 밑의 더 낮은 것

발바닥 밑의 더 낮은 것

밟히고 처박히고 피를 흘리는군

발바닥 밑에는

바둥거리며 숨통 하나가

언제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군.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평민사, 1983

 

 


 

 

천양희 시인 / 인천에 가서

 

 

연안부두에 불빛 시끄러운데

사람의 집들은

그들의 그림자를 숨기고 있다

 

외항선 몇 개 떴다 가는 날은

서울의 두통 서울에서 못 풀고

시퍼런 바다쪽으로 뛰어든다

 

파도는 갈기를 날리며 일어서고

섬들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오늘 항구에는 갈매기도 안 날고

오늘 바다에는 배 한 척 안 다닌다

 

기다려라 기다려라

머지않아 밀물이 닥치리라

그러면

도시는 모든 입을 열고

사악한 새들을 날려 보내리라.

 

사람 그리운 도시에, 나남, 1988

 

 


 

천양희(千良姬) 시인

1942년 부산에서 출생. 196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