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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달자 시인 / 어두운 집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2.

신달자 시인 / 어두운 집

 

 

1

 

시력이 어두운 내 아이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마음으로 어미죄를 알아차린다.

제 마음 밖에 서성이는 어미 마음을 마음으로 바라보고 눈은 더욱 어두워진다.

 

2

 

안보여요 안보여요

아이는 동공을 조이며 세상을 들여다보며 안보여요 안보여요 눈밝은 어미 마음을 어듭게 한다.

나무를 보아라 꽃을 보아라 하늘을 보아라

안경을 끼운 날 아이는 더욱 어두운 표정을 하였다.

나무를 보기 전 꽃을 보기 전 아이는 먼저 어미의 마음을 본 탓일까.

 

3

 

밤눈까지 밝은 어미는 자정에야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꿈속에서도 안경을 찾는지 두 손을 허전히 더듬고 있었다.

아이의 눈보다 더 어두운 어미 마음이 잡힐까 나는 물러서며 벽을 기대었다. 덕지덕지 죄가 발린 이마를 기댄 벽 위에 십자가가 어제보다 커져서 걸려 있었다.

 

4

 

안경알을 닦으며 나는 마음을 떨었다. 닦아지지 않는 내 영혼의 먼지 그 깊은 곳이 드러날까 마음이 죄었다.

닦은 안경을 받아 쓴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잘 보이니?」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는 것은 어미의 젖은 마음이었다.

 

다만 하나의 빛깔로, 문학사상사, 1987

 

 


 

신달자(愼達子, 1943~ ) 시인

경남 거창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2년 《현대문학》을 통해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아가』, 『아버지의 빛』 등과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외에 산문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등이 있음. 1964년 여상 신인여류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1998년 '향문화대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