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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 시인 / 담쟁이덩굴
문예진흥원 뒤에 있는 토탈디자인의 벽을 감아올라간 담쟁이덩굴이 비바람 맞아 참을 수 없는 충격으로 설레던 날은 한 도시에서 다른 모양으로 사는 너를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지 그러나 나는 너를 생각하기 전 어두운 동요들이 일어나는 잎들의 돌연함에 놀라 떨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잎들의 괴로움이 있을 것이다 깜짝깜짝 깨어나는, 전율도 있을 것이다 담쟁이 덩굴에서 비바람 소리 들린다 우리가 우리 그림자 뒤돌아볼 때 우리 시선이 머문 그곳으로 불길한 시간이 흔적 없이 지나간다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최하림 시인 / 떠난 자를 위하여
오늘도 먼 데서 밤은 함뿍 내리고 바람마다에 우거진 숲이 부우연 머리를 흔드는데 손 하나 허공에 뻗을 수 없이 적막이 내린다 내리는 적막 속에서 여인들이 소리없이 와 떠난 자를 그리는 슬픔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물 위에 밀리는 달빛을 보고 서 있다
우리들을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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