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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 감꽃
밝은 햇빛 속에 또록 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아이들 두셋이 짚오리에 타래 타래 감꽃을 엮어 목걸이를 꿰면서 돌중 흉내를 내고 있다. 감꽃 속에 까치발 뒤꿈치도 묻히는 게 보이면서 또랑 또랑한 목소리도 크림색 밝은 향기에 실리면서 오월의 햇빛 속에 또록 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감꽃 줍은 애들 곁에서 하나 둘 나도 감꽃을 주우면서 금목걸이를 목에 두를까 금팔지를 두를까 능구렁이 같은 나의 어두운 노래 끝도 실리면서 밝은 햇빛 속에 또록 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꿈꾸는 섬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내 어린 날은 한 소녀가 지나다니던 길목에 그 소녀가 흘려 내리던 눈웃음결 때문에 길섶의 잔 풀꽃들도 모두 걸어 나와 길을 밝히더니
그 눈웃음결에 밀리어 나는 끝내 눈병이 올라 콩알만한 다래끼를 달고 외눈끔적이로도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도 차지 않고 잘도 지내왔더니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슬퍼라
우리 둘이 지나다니던 그 길목 쬐그만 돌 밑에 다래끼에 젖은 눈썹 둘, 빼어 눌러 놓고 그 소녀의 발부리에 돌이 채여 그 눈구멍에도 다래끼가 들기를 바랐더니 이승에선 누가 그 몹쓸 돌멩이를 차고 갔는지 눈썹 둘은 비바람에 휘몰려 두 개의 섬으로 앉았으니
말없이 꿈꾸는 저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우리 고향 민간요법으로, 눈에 다래끼가 나면 눈썹 두 개를 빼어 행인이 오가는 길의 돌 밑에 묻어놓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차게 되고 그 돌을 찬 사람은 다래끼가 들게 되는데, 나는 중학교 때 20리 길을 통학하면서 한 소녀를 죽도록 사랑한 적이 있었고 다래끼가 나서 부끄러워 했던 적이 있었음.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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