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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수권 시인 / 감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2.

송수권 시인 / 감꽃

 

 

밝은 햇빛 속에

또록 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아이들 두셋이 짚오리에

타래 타래 감꽃을 엮어 목걸이를 꿰면서

돌중 흉내를 내고 있다.

감꽃 속에 까치발 뒤꿈치도 묻히는 게 보이면서

또랑 또랑한 목소리도

크림색 밝은 향기에 실리면서

오월의 햇빛 속에

또록 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감꽃 줍은 애들 곁에서

하나 둘 나도 감꽃을 주우면서

금목걸이를 목에 두를까

금팔지를 두를까

능구렁이 같은 나의 어두운 노래 끝도

실리면서

밝은 햇빛 속에

또록 또록 눈을 뜬 감꽃이 지고 있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 시인 / 꿈꾸는 섬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내 어린 날은 한 소녀가 지나다니던 길목에

그 소녀가 흘려 내리던 눈웃음결 때문에

길섶의 잔 풀꽃들도 모두 걸어 나와

길을 밝히더니

 

그 눈웃음결에 밀리어 나는 끝내 눈병이 올라

콩알만한 다래끼를 달고 외눈끔적이로도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도 차지 않고

잘도 지내왔더니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슬퍼라

 

우리 둘이 지나다니던 그 길목

쬐그만 돌 밑에

다래끼에 젖은 눈썹 둘, 빼어 눌러 놓고

그 소녀의 발부리에 돌이 채여

그 눈구멍에도 다래끼가 들기를 바랐더니

이승에선 누가 그 몹쓸 돌멩이를

차고 갔는지

눈썹 둘은 비바람에 휘몰려

두 개의 섬으로 앉았으니

 

말없이 꿈꾸는 저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우리 고향 민간요법으로, 눈에 다래끼가 나면 눈썹 두 개를 빼어 행인이 오가는 길의 돌 밑에 묻어놓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차게 되고  그 돌을 찬 사람은 다래끼가 들게 되는데, 나는 중학교 때 20리 길을 통학하면서 한 소녀를 죽도록 사랑한 적이 있었고 다래끼가 나서 부끄러워 했던 적이 있었음.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송수권[宋秀權, 1940.3.15 ~ 2016.4.4]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호는 평전(平田).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1998. 시와시학사), 제10

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시문학상(2003),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