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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 다시 남한강(南漢江) 상류에 와서
헐벗은 가로수에 옹기전에 전봇줄에 잔비가 뿌리고 바람이 매달려 울고 나는 진종일 여관집 툇마루에 나와 잿빛으로 바랜 먼 산을 보고 섰다 배론땅은 여기서도 삼십 리라 한다 궂은 날 여울목에서 여자 울음 들리는 강 따라 후미진 바윗길을 돌라 한다 목 잘린 교우들의 이름 들을 적마다 사기가마 굳은 벽에 머리 박고 울었을 황사영을 생각하면 나는 두려워진다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란 무엇인가고 친구들의 목숨 무엇보다 값진 것 질척이는 장바닥에 탱자나무 울타리에 누룩재비 참새떼 몰려 웃고 까불어도 불과 칼로 친구들 구하려다 몸 토막토막 찢기고 잘리고 씹힌 그 사람 생각하면 나는 무서워진다 번개가 아우성치고 천둥이 울부짖을 때 추자도 제주도 백령도로 쫓기며 그 아내 원통해 차마 혀 못 깨물 때 누가 그더러 반역자라 하는가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란 무엇인가고 헐벗은 가로수에 옹기전에 전봇줄에 잔비가 뿌리고 바람이 매달려 우는 다시 남한강 상류 궁벽진 강촌에 와서 그 아내를 생각하면 나는 두려워진다 내 친구를 생각하면 나는 무서워진다
새재, 창작과비평사, 1979
신경림 시인 / 달, 달
마당에 자욱한 솔잎 내음 가마솥에 송편을 세 번 쪄내도록 객지 나간 딸들 왜 기별 없을까 늙은 양주 민화투도 시들어질 쯤엔 노란 국화꽃 감으며 드는 어스름 땅거미도 서럽고
문득 문밖에 인기척 있어 반색하고 문 열어 내다보니 달이 눈부시게 차려 입고 대문을 밀고 들어서고 있다 그 뒤로 또하나 달이 눈물과 한숨으로 나무에 걸린 어스름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3
신경림 시인 / 달 넘세*
넘어가세 넘어가세 논둑밭둑 넘어가세 드난살이 모진 설움 조롱박에 주워담고 아픔 깊어지거들랑 어깨춤 더 흥겹게 넘어가세 넘어가세 고개 하나 넘어가세 얽히고 설킨 인연 명주 끊듯 끊어내고 새 세월 새 세상엔 새 인연이 있으리니 넘어가세 넘어가세 언덕 다시 넘어가세 어르고 으르는 말 귓전으로 넘겨치고 으깨지고 깨어진 손 서로 끌고 잡고 가세 넘어가세 넘어가세 크고 큰 산 넘어가세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고 디딜 것은 디디고 밟을 것은 밟으면서 넘어가세 넘어가세 세상 끝까지 넘어가세
넘세'는 어* 달 넘세: 흔히 `달람새'라고도 하는데 경북 영덕 지방에서 하는 여인네들의 놀이 `월워리 청청'의 한 대목으로, 손을 잡고 빙 둘러앉아 하나씩 넘어가면서 `달 넘세' 노래를 부름. `달을 넘어가자'는 뜻의 `달려움을 극복해가는 일을 상징한다고 함.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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