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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태주 시인 / 겨울행(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2.

나태주 시인 / 겨울행(行)

 

 

열살에 아름답던 노을이

마흔살 되어 또다시 아름답다.

호젓함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걸 알게 되리라.

 

들판 위에

추운 나무와 집들의 마을,

마을 위에 산,

산 위에 하늘,

 

죽은 자들은 하늘로 가

구름이 되고 언 별빛이 되지만

산 자들은 마을로 가

따뜻한 등불이 되는 걸 보리라.

 

굴뚝각시, 오상, 1985

 

 


 

 

나태주 시인 / 굴뚝각시 1

 

 

사방 십리 안에서

잔치가 열리거나 초상집이 생기면

어떻게 그리 용하게 아는지

찾아 와서는 일도 거들고

잔심부름도 곧잘 하는 굴뚝각시.

 

일러 주는 사람도 있을 리 없으니

코로 냄새 맡아 아는지 모를 일이다만

용하게 찾아와 음식도 달라해 먹고

술도 청해서 먹고

취하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잠드는

굴뚝각시.

 

어제는 우리 교회 목사님 취임하시는 날

또 용케 불청객으로 찾아와

그 누런 이빨 드러내 웃으며

차린 음식 자기가 먹지 않으면

쉬어서 못쓰게 되니

어서 상차려 오라며

호령호령하더라는 거였다.

 

궂은 일 기쁜 일에 빠지지 않는

굴뚝각시.

이 땅 위의 일등손님이요

하늘나라의 일등주인인

굴뚝각시.

 

굴뚝각시, 오상, 1985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를 비롯,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산촌 엽서』,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등과 산문집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동화집 『외톨이』 등이 있음.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화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