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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여정(旅程)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완도 무선국에서 걸려온 시외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새벽길을 나선다. 새벽 겨울 바다 바람의 잡음(雜音)과 부음(訃音)이 짬뽕이 된 수화기속에 하라부지가, 윙윙, 하라부지가 도라가셔쓰ㅇ께, 윙윙, 느그 미국 성님한테, 윙윙, 전화하고, 윙윙, 빨리
택시로 강남 터미날까지
고속버스로 광주까지
직행버스로 해남까지
통통배로 전라남도(全羅南道) 완도군(莞島郡)에 부속된 섬까지
갈수록 길은 점점 좌우(左右)가 오므라들고 상하(上下)가 험했다. 상류(上流)로 거슬러올라갈수록,
상가(喪家)는 잔칫집이었다. 일흔 가호 앞뒤 섬사람들이 일당육칠(一當六七)의 전식구(全食口)를 몰고 와 4박 5일 장(葬)을 지냈다. 에미들이 따라온 새끼들에게 입이 찢어지든 말든 한 볼때기씩 고깃점을 밀어넣어주면 아이들은 뭔갈 움켜쥐고 뒤안으로 게처럼 잽싸게 빠져나간다. 사내들은 천막 밑으로 들어와, 가신 그 양반, 복인(福人)이셔 복인(福人), 한마디씩 거들고 앉는다.
부정기적으로 곡(哭)을 하고 나온 큰어머니도 이 상 저 상 돌아다니며 이것 놔라 저것 놔라얼굴에 희색(喜色)을 숨기지 못한다. 저노무 영감뗑이 빨리 디져부러쓰믄, 소리치던 그녀는 기쁘다. 뭍으로 나간 일가붙이들이 속속히 들어오고, 목포 작은고모 일금 이십만(貳拾萬) 원, 부산 첫째 작은아버지 일금 삼십만(參拾萬) 원, 광주 큰형님 일금 오십만(五拾萬) 원, 서울 선자 누님 일금 일십만(壹拾萬) 원, 엘에이 작은형님 일금 삼십만(參拾萬) 원이 들어오고, 돼지 다섯 마리 잡고, 소주 열 박스를 풀어놓았으니 큰어머니는 오지다. 한편으로 섬사람들 앞의 생색(生色)과 과시(誇示), 베푼다는 생각으로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 뭍사람들 앞의 상대적 빈곤과 `없이 살았다'는자기 서러움으로 영전(靈前)에서 원껏 울 수 있는 기회가 만족스럽다. 해남 고모와 둘째 작은어머니, 종형수는 입 꾹 다물고 부엌과 구정물통 사이만 오고간다.
사람이 죽고, 또 울고불고 해도, 한 사람의 죽음을 치어내는 일 역시 살아 있는 사람들의살아가는 공동행사(共同行事)였다. 한 구멍의 성기(性器)의 공동체(共同體)에서 빠져나왔어도, 그러나 제각기 뻗어나간 삶의 `꼬락서니'는 천양지간이다. 사촌 팔촌끼리 미국에서 온 아이들과 도시에서 온 아이들과 섬에서 자란 아이들은 뭔가 상호 적대적이다. 어느 놈은 냄새 난다고 밥도 먹질 않는다.
이윽고 계꾼들 삼봉치는 소리도 잦아들고, 마당의 모닥불도 가물거리고 한차례 음복도 끝나고, 첫물 빠지는 소리만 우울하게 들릴 즈음, 할아버지 죽음보다 더 깊은 수렁의 슬픔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분빠이한다. 슬픈 섬이 슬픈 섬끼리 그믐달 그늘을 늘이며 대열을 짓는다.
목포 고모는 남편이 사우디 나가고 자식들이 선창 불량아들과 어울려 속썩는다. 부산 작은아버지는 어물(魚物) 거간꾼이다. 객지에서 식구도 많고 살기가 팍팍하다. 자꾸 빽이있어야 한다고, 집안에 판검사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서울서 공부 많이 했으면 뭔가 해야지 않느냐고 한다. 학원 선생인 광주 형님도 과외 금지 바람에 쫄딱 망했다. 서울 누님은 보험회사 외판사원이다. 목표 달성액이 1억 원이라며 생명보험 하나쯤 들라고 한다. 간호원인 형수를 앞세우고미국 간 작은 형님은 한인가(韓人街)에서 페인트상(商)을 한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뻑적지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뭔가 붙들려고 바퉁거리는, 그러나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안간힘이다. 그러나 안간힘도 힘이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당신(當身)들은 손에 물 안 묻히고 산다는점이다. 큰어머니가 다시 훌쩍거리고, 둘째 작은아버지는 등을 돌려앉고, 해남 고모는 역시 말이없다. 잠시 사람들은 썰물과 밀물이 뒤바뀌는 소리를 듣는다. 드는 물살이 해우 발대 사이로 빈배를 뜨게 한다. 이 섬을 뜨라고 누가 말한다. 타고나기를 뱃사람으로 태어난 종손(宗孫), 경식 형님이 버럭, 꽥, 소리를 지른다. 이 오살할 놈의 섬을 떠나려도 빚으로 묶여 있다고, 겨울내 쎄빠지게 해우를 만들어도 여름에는 다시 빚내어 산다고, 목포나 광주 사람들의 빚으로 몽땅 꼴아박는다고,
이튿날, 바람 없고 맑고 찬 아침, 한 채의 꽃상여를 짓고 앞바다 솔섬으로 사람들은 건너갔다. 여인들은 물가에 남아 울었다. 섬의 부족한 흙으로 할아버지를 묻고 사람들은 돌아갔다.
통통배로
직행버스로
고속버스로
택시로
혹은 비행기로
모두들 일이 밀렸다고, 목포로, 광주로, 부산으로, 혹은 서울로, 혹은 엘에이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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