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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 면민회(面民會)의 날
우리 청산포 사람들 죽지 않고 살다 보면 꼭두 일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들 만나는군.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라는데 우리 죽지 않고 살아 만나는 게 이게 어딘가 철수, 용복이, 상철이, 또 내 아는 국민학교 동창들 갓 20대 안팎으로 여드름을 달고 와서 어른이 되고 호주가 되고 대물림 끝에 외톨박이로 떠돌던 놈들, 이젠 제법 출세도 했다. 희끗한 머리에 장군이 되고 사장이 되고 과장, 계장, 주사 하다못해 교회당 종지기 노인의 아들이었던 끝남이도 어엿한 목사가 되었다.
우리 청산포 사람들, 창경원의 벚꽃이 함빡 구름처럼 피는 날 명함을 박지 못한 놈들만 구석지에 모여 언제나 기가 꺾였다. 저희들끼리 키득거리고 술잔을 엎었다. 가설무대에서 마이크가 울고 삼류 가수보다 못한 굳세어라 금순이가 울고 흥남 부두에 눈발이 쳤다. 새로 바뀐 전화번호를 적고 번지수를 건네 받다 보면 새로 끼인 얼굴도 한둘, 산 속의 댕댕이넝쿨처럼 모진 인연들만 얽히고 설켰다. 이잣돈에 차용증 재판건이 나오고 저희들끼리 치고 받았다.
우리 청산포 사람들 막판엔 면장이 나서서 인사말에 우리 청산포 아바이들, 힘주어 수십 번도 더 들먹거렸고 언제나 그랬듯이 총무란 작자가 회관건립기금 기부자 명단을 호명하면 코빼기도 안 보인 장군이다 사장이다 출세한 놈들의 이름자만 거드름을 피웠다.
이 모임도 이젠 시들해졌군 누가 탄식을 했고 변질됐어 종간나새끼들! 누가 맞받아 응수를 했다.
아, 결국은 조금씩 취해서 돌아오는 길 못난 놈들만 고향냄새를 풀어 놓고 돌아오는 밤길 해마다 이맘때면 구로공단 막바지 언덕길엔 하늘 높이 둥근 달이 떠서 내 고향 성천강 물소리만 귀에 부서졌다.
한국대표시인100선집, 지리산 뻐꾹새,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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