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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 시인 / 파리 잡기
파리채를 높이 들어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파리와 모기 날갯짓 소리는 귓구멍을 찌르고 피를 간질이고 쓸데없이 힘을 한데모아 정신을 집중하게 한다 멍청하게 점 하나 선 하나에 정신통일하게 한다
날개 있는 파리가 잡혀주지 않으면 날개 없는 파리채는 파리를 잡을 수 없다 가끔 인심 쓰듯 파리는 알맞은 사정거리에 와 준다 살갗의 소름을 간질이던 날개와 털다리가 순순히 으깨어지러 와준다
파리채가 파리를 겨냥했을 때
파리는 나처럼 잠시 후에 닥칠 일을 하얗게 모르고 있었다 명상으로 모든 동작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때가 놈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이미 내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렸을 때 콧구멍으로 숨 쉬는 회수만큼 치욕이 내 몸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었을 때 그 치욕을 판 대가로 시 몇 편 쓰고 문학상 받았을 때
파리는 날갯짓을 시작했다 수천 년 단련된 민첩함으로 바닥을 박차고 떠올랐지만 날개가 전혀 쓸모가 없을 만큼 파리와 파리채 사이는 결정적으로 좁혀져 있었다 나는 고르고 평온하게 숨 쉬고 있었는데 왜 땅이 꺼지도록 한숨 쉬느냐고 누군가 내게 물었다 발모제를 뿌려도 점점 넓어지는 대머리가 제 무게로 고개를 꺾으며 자꾸 기울어지고 있었다 털 한 가닥 비듬 하나 어눌한 말 한 마디로도 나는 꼼짝없이 드러나 버렸고 도저히 가려지지도 감춰지지도 않았다
으깨어지기 전까지는 세포 하나까지도 온전한 바로 이때가 삶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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