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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 / 숫소
저 놈은 숫소다. 눈썹이 검고 불알은 크고 머리엔 도깨비의 뿔이 솟아올랐다. 저 놈은 숫소다. 콧구멍이 내뿜는 콧김은 증기기관차의 증기처럼 거세고 다리는 다리의 다리처럼 튼튼한데 쯧쯧, 저런! 숫소가 쿵 하고 드러눕는다. 빼빼 마른 백정 앞에서 덩치 큰 숫소가 드러눕는다. 드러누워 버둥거리다가 도살장 천정 향해 검은 울음을 게우다가 저것 봐, 숫소가 일어선다. 도끼와 뿔의 박치기다. 아니다. 도끼와 급소의 박치기다. 숫소는 글썽글썽한 큰 눈알을 부릅뜬 채 죽어간다. 저 놈은 숫소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시궁쥐
먹을 거라면 환장하는 새끼들에게 좀 쩝쩝댈 거라도 물어다 주자는 거겠지 아니면 배추잎이라도 장만해서 군색한 살림을 그럭저럭 꾸려 나가자는 거겠지
부지런한 맞벌이 부부 시궁쥐 한 쌍이 뭐 물어갈 게 있다고 가난한 백성들의 쓰레기통에 뭐 물어 갈 게 있다고 눈치를 보아가며 부지런하게 들락거린다
쥐들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나 콧수염을 기르고 털가죽 외투를 입고 피에 젖은 성생활(性生活)까지 뻔질나게 하면서 사나 평생을 그런 짓거리나 되풀이하다가 죽나
좀 쩝쩝거릴 것만 떨어지지 않으면 되겠지 아무리 더러운 똥오줌 진창바닥이라도 제대로 숨도 못 쉬는 쥐구멍 속에서도 모가지만 모가지만 붙어 있으면 되겠지 시궁쥐들은 배가 고프면 서로 잡아먹어도 되겠지
灼晩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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