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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승호 시인 / 숫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6.

최승호 시인 / 숫소

 

 

저 놈은 숫소다.

눈썹이 검고

불알은 크고

머리엔 도깨비의 뿔이 솟아올랐다.

저 놈은 숫소다.

콧구멍이 내뿜는 콧김은

증기기관차의 증기처럼 거세고

다리는 다리의 다리처럼 튼튼한데

쯧쯧, 저런!

숫소가 쿵 하고 드러눕는다.

빼빼 마른 백정 앞에서

덩치 큰 숫소가 드러눕는다.

드러누워

버둥거리다가

도살장 천정 향해 검은 울음을 게우다가

저것 봐, 숫소가 일어선다.

도끼와 뿔의 박치기다.

아니다.

도끼와 급소의 박치기다.

숫소는 글썽글썽한

큰 눈알을 부릅뜬 채 죽어간다.

저 놈은 숫소다.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 시궁쥐

 

 

먹을 거라면 환장하는 새끼들에게

좀 쩝쩝댈 거라도 물어다 주자는 거겠지

아니면 배추잎이라도 장만해서

군색한 살림을 그럭저럭 꾸려 나가자는 거겠지

 

부지런한 맞벌이 부부

시궁쥐 한 쌍이 뭐 물어갈 게 있다고

가난한 백성들의 쓰레기통에

뭐 물어 갈 게 있다고

눈치를 보아가며 부지런하게 들락거린다

 

쥐들도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나

콧수염을 기르고 털가죽 외투를 입고

피에 젖은 성생활(性生活)까지 뻔질나게 하면서 사나

평생을 그런 짓거리나 되풀이하다가 죽나

 

좀 쩝쩝거릴 것만 떨어지지 않으면 되겠지

아무리 더러운 똥오줌 진창바닥이라도

제대로 숨도 못 쉬는 쥐구멍 속에서도 모가지만

모가지만 붙어 있으면 되겠지 시궁쥐들은

배가 고프면 서로 잡아먹어도 되겠지

 

灼晩 미래사, 1991

 

 


 

최승호 시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서울대학교와 同 대학원 졸업.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 『그로테스크』, 『모래인간』 등과 산문집으로 『황금털 사자』, 『달마의 침묵』, 『물렁물렁한 책』 등과 그림책으로 『누가 웃었니?』, 『이상한 집』이 있음. 1982년 '오늘의 작가상', 1985년 '김수영문학상', 1990년 '이산문학상', 2000년 '대산문학상' 수상.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