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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길상호 시인 / 도비왈라1)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27.

길상호 시인 / 도비왈라1)

 

 

  겹겹 허물을 지고 와

  오늘도 강에 발을 담그네

 

  빨랫돌이 모두 닳아 사라지지 않는 한

  물의 족쇄는 벗을 수 없네

 

  헌 옷이 날개가 될 수 있도록

  돌리고 치대고 짜내다 보면

  물살에 깎여 조금씩 얇아지는 뼈

 

  널어놓은 구름이 바싹 마르는 동안

  금이 간 발바닥으로

  흐려진 신들의 목소리가 스미네

 

  잘 다려진 다음 생을 위해

  현생은 빼내야 할 얼룩 같은 것

 

  물결이 흘러간 자리

  또 다른 물결이 빨랫감처럼 쌓이네

 

  물길도 정해진 계급이 있어

  나의 강은 바닥으로만 흐르네

 

1) 빨래를 하는 사람,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의 최하 신분인 수드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취급을 받는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월호 발표

 

 


 

길상호 시인

1973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그 노인이 지은 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문학세계사, 2004)와 『모르는 척』(천년의시작, 2007), 『눈의 심장을 받았네』(실천문학사, 2010)가 있음. 2004년 현대시동인상, 2008년 제10회 천상병 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