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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 / 새벽 눈
서해바다를 건너서 질퍽이는 개펄을 지나서 하늬바람은 달려와 사납게 창을 흔들고 정류장 대합실엔 불이 꺼진 연탄 난로 펄펄 뛰는 고기가 담긴 플라스틱 자배기 옆에서 젖은 발을 구르는 아낙네가 넷 새벽장 보러 가는 장꾼을 실을 시골 버스는 늙은 당나귀처럼 잠이 덜 깨어 운전사의 주름진 이마 검은 손등에 떨어지는 소금기 머금은 새벽눈
쓰러진 자의 꿈, 창작과비평사, 1993
신경림 시인 / 세월
흙 속을 헤엄치는 꿈을 꾸다가 자갈밭에 동댕이쳐지는 꿈을 꾸다가……
지하실 바닥 긁는 사슬소리를 듣다가 무덤 속 깊은 곳의 통곡소리를 듣다가……
창문에 어른대는 하얀 달을 보다가 하늘을 훨훨 나는 꿈을 꾸다가……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신경림 시인 / 소리
너는 나를 칼날 위에 서게 한다 너는 나를 불 앞에 서게 한다 너는 나를 물 속에 뛰어들게 한다
한밤에 길을 떠나게 한다 외로운 고장 썰렁한 장바닥에서 진종일 떨며 서성거리게 한다 귀먹은 땜쟁이 길동무삼아 산마을 갯마을을 떠돌게 한다
지는 해 등에 업고 긴 그림자로 꿈 속에서 고향을 찾게 한다 엿도가에서 옹기전에서 달비전에서 부사귀 몽달귀 동무되어 뛰게 한다 새벽에 눈뜨고 강물소리를 듣게 한다
너는 나를 불을 두려워하게 한다 물 속에 뛰어들기를 물리치게 한다 그래서 한밤에 다시 돌아오게 한다 골방에 깊이 숨어서 떨게 한다
그러나 너는 나를 되떠나게 한다 비틀대고 절뚝거리는 이들 데불고 버려진 포구에서 썩어가는 갯벌에서 마파람 하늬바람에 취하게 한다 너는 나를 다시 칼 날 위에 서게 한다.
달넘세, 창작과비평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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