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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호 시인 / 설국(雪國)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지금 설국(雪國)이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기습적인 눈폭탄의 투하로 인해 서울 전지역에 대설주의보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새볔부터 다시 어마하게 눈폭탄이 계속해서 투하되던 엄동설한(嚴冬雪寒) 속의 어느 날의 늦저녘,
늘상 북적대던 자동차의 행렬도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사람들도 자신들의 아지트나 피난처로 대피한지 오래!
함박눈의 세례가 그치기가 무섭게 해저문 광화문 네거리의 상공에는
한 마리의 비둘기
두 마리의 비둘기
세 마리의 비둘기
네 마리의 비둘기
다섯 마리의 비둘기
여섯 마리의 비둘기
일곱 마리의 비둘기
여덟 마리의 비둘기
아홉 마리의 비둘기
열 마리의 비둘기
그리고 또 한마리
그리고 또 한마리
모두 열두 마리의 비둘기가
편대를 이루어 도심의 빌딩숲을 가로질러 어디선가 나타나서 잠시 선회비행 하더니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의 보도블럭 위로 일제히 착륙했다
주변에는 여기저기 온통 눈폭탄의 잔해들뿐, 인간들이 먹다버린 빵조각의 부스러기조차 어디에도 없다
모두 눈 속으로 묻혀버린 초토화된 도시(都市), 엄동설한(嚴冬雪寒) 속의 그런 도시(都市)에서
그들 비둘기 레지스탕스*들이 찾아야할 피난처는 진정 어디인가?
아아! 시인들은 지금 비둘기들과 같은 신세라네
비둘기들은 혼돈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인들의 슬픈 자화상(自畵像)
설국(雪國)으로 변해버린 서울에서 그들의 피난처는 이제 어디인가?
밤이 깊어지자, 열두마리 비둘기들은 모두 정처없이 어디론가 사라졌고
주변이 온통 눈에 덮힌 25時**의 깊은 적막 속에서도 도심 속의 빌딩 숲속 거리들은
고해상도 전광판과 네온싸인들이 다시 소돔과 고모라의 환락街로 어느새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레지스탕스(résistance): 저항(抵抗)을 뜻하는 프랑스어(語).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하여 점령된 프랑스·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벨기에·유고슬라비아·체코슬로바키아·그리스·폴란드·소련 등의 유럽 제국(諸國)에서 비합법적으로 전개된 독일에 대한 저항운동 또는 저항군을 뜻함.
**루마니아 작가 C.V.게오르규의 유명한 소설 제목으로 이 시에서는 인간성 부재의 상황과 폐허, 절망의 시간을 표현한 것임.
시집 『도시 속의 마네킹들』(시인광장,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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