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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태주 시인 / 어머니 치고 계신 행주치마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0.

나태주 시인 / 어머니 치고 계신 행주치마는

 

 

어머니 치고 계신 행주치마는

하루 한 신들 마를 새 없이,

눈물에 한숨에

집뒤란 솔밭에 스미는

초겨울밤 솔바람 소리만치나

속절없이 속절없이…….

 

봄 하루 허기진 보리밭 냄새와

쑥죽 먹고 짜는 남의 집 삯베의

짓가루 냄새와 그 비린내까지가

마를 줄 몰라, 마를 줄 몰라.

 

대구로 시집간 딸의 얼굴이

서울서 실연하고 돌아와 울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박혀 눈에 가시처럼 박혀

남아 있는 채,

남아 있는 채로…….

 

이만큼 살았으면

기찬 일 아픈 일은 없으리라고

말하시는 어머니, 당신은

오늘도 울고 계시네요.

어쩌면 그렇게 웃고 계시네요.

 

우리 젊은 날의 사랑아, 청하, 1987

 

 


 

 

나태주 시인 / 제비꽃

 

 

1

 

외할머니 따라

외갓집 가겠다고

떼쓰며 울었다,

뒤울안에 숨어서.

 

울다가 심심해

발밑을 보니

파아란 꽃이 웃고 있었다,

고 조그만 것이 입을 벌리고.

 

2

 

비는 산성 너머서 오고

바람도 산성 너머서 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꽃도 산성 너머서부터

피어온다고 믿었다.

 

3

 

소꿉동무도 없이

누나도 없이

토방밑에서

모시 팔러 장에 간

어머니 기다려

황토흙 마르는 냄새

배가 고플 때,

산비둘기 또한

산성 너머서

혼자 울었다.

 

굴뚝각시, 오상, 1985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를 비롯,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산촌 엽서』,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등과 산문집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동화집 『외톨이』 등이 있음.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화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