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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수권 시인 / 우리들의 즐거운 집짓기 놀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0.

송수권 시인 / 우리들의 즐거운 집짓기 놀이

 

 

이 탁자를 보십시오. 흰줄로 그어진 중앙선에 박혀 있는 UN기와 붉은 깃발이 조금씩 높아지며 펄럭이는 것을 ― 이 선을 연장해 나가면 똑바로 휴전선이 되는 게지요? 그럼, 이 집을 설계할 때 이 중앙선만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사명감으로 단 0.1mm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설계를 했다 이 말 아입니껴. 오, 언제나 즐거운 나의 손님 커다란 딸기코를 흔들며 오 땡큐 하면 언제나 저쪽도 쎄쎄 이렇다 아입니껴. 팔에 빨간 완장을 두른 쪽은 언제나 북쪽 강냉이 수염들이구 넥타이를 풀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쪽은 언제나 이쪽 아이들 아입니껴. 아 지금 ××차 무슨 정전위원회가 시작되나 봅니다. 무쇠 테이블이 셋, 무쇠 스프링 의자가 똑같이 중앙선을 마주보며 한쪽씩이 여섯, 이 탁자 위에 올려진 유일 품목, 오늘 글쎄 어떤 상품이 진열될지요. 납북어부? 무차별 사격? 다단추식의 지뢰? 아웅산 사건으로 인한 테러근성? 인도주의 교습? 88 올림픽 교류? 우리 솔직히 터놓고 합시다. 그래, 그 말버릇 여전하시구레. 뭐라구? 갓댐!(죄없는 무쇠탁자 흔들흔들) 두 개의 판자문 열고 닫고. 남문과 북문. 허 이거 왜 이래? 노동자 농민들 피땀 빨아 이젠 낯가죽이 뻔뻔해졌다 이거 아입니껴? 만나자마나 또 공세로군! 공세? 디게 무서워하네. 정초부터 떨긴? 그 성깔 여전하시다레. 담배 피기라요. 담배 피기라요. 개성시 남단, 문화회관이 섰던 자리 아니, 문화회관의 변소, 우리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 그 변소간이란 것, 동무나들 알기나 하갔수레. 이 똥자리를 깔구서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까꾸로든 옳게든 통일이우다. 아, 우리들의 즐거운 집짓기놀이. 저는예, 이 문을 자유로이 남문으로 빠지려다 영웅적으로 귀쌈을 맞을 뻔한 적도 있지만예, 지금은 철이 들어 노크(에취! 이게 부르조아 무슨 냄샌데?)도 할 줄 알고 급하면 우리 중앙어로 `탕! 탕!' 두 번, 이렇게. 그러나 익숙해진 게 아니라예. 팔에 완장을 두르고 사타구니에 개짐을 처박고 피양에서 내려오는 날은 아침부터 동무들에게 시집 간 것처럼 괜히 기분이 좋아라예. 뭐라꼬? 퇴폐적이라꼬예? 이래봬도 내 처녀성은 우리 아바이 동무나도 알고 있다는 것 이거이 동무나들 알기나 하갔수레.

 

아도, 창작과비평사, 1985

 

 


 

 

송수권 시인 / 위인의 집

 

 

나는 오늘 빠리 `위인의 집' 무덤들 앞을 지나가며

우리에게도 이런 무덤의 광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관광 안내원에게 나뽈레옹의 무덤이 거기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성(知性)을 칼로 다스린 자는 거기 묻힐 수 없다고 한다.

나뽈레옹은 키가 작아 유럽 정벌을 감행하면서도

일곱 번 저격을 받아

차례로 여섯 마리의 말이 죽고도 살아 남았다고 한다.

드골 대통령도 자기의 죽을 때를 알아

거기 묻히도록 의회에서 정식 발의를 했지만

드골리즘은 난폭성이라고 딱지가 붙어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전유럽을 경영했던 나뽈레옹도

레지스땅스의 아버지라 불리던 드골도

끝내 그 무덤을 비집고 들어 갈 수만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빌면 드골의 코가 높고 뾰족하기로는

에뺄탑보다 더하지만

드골의 코보다 더 뾰족한 것은 빠리 시민들의

지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잠시 소르본느 대학의 우중충한 건물을 뒤로 돌아

이 무덤에 줄을 이어 선 주검들을 생각하며

우리에게도 이런 무덤의 광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서울에 이런 광장이 하나 들어선다면

도대체 여기 묻힐 위인은 몇 명이나 되느냐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겨움을 느꼈다.

나뽈레옹이나 드골이 거기 묻히지 못한 것처럼

우리를 잘못 길들이고 잘못 가르친 역겨운 인물들,

나는 오늘 이 무덤 앞을 지나가며 어려서

시골집 마당에 횟배를 앓으며

배고파 잦아진 목소리로 불러대던

우리 건국의 위인 제1호 리승만 대통령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는 하와이로 쫓겨 갔다가 거기서 죽고, 후에 다시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그분을 처음으로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독재를 쓴 것보다 정치를 잘못한 것보다 이제,

나는 그의 시작이 더 잘못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도, 창작과비평사, 1985

 

  


 

송수권[宋秀權, 1940.3.15 ~ 2016.4.4]시인

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호는 평전(平田).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제1시집 『산문(山門)에 기대어』(1980. 문학사상), 제2시집 『꿈꾸는 섬』(1982. 문학과지성사), 제3시집 『아도(亞陶)』(1985. 창작과비평사), 제4시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동학서사집)』(1986. 나남), 제5시집 『우리들의 땅』(1988. 문학사상), 제6시집 『자다가도 그대 생각하면 웃는다』(1991. 전원), 제7시집 『별밤지기』(1992. 시와시학사), 제8시집 『바람에 지는 아픈 꽃잎처럼』 (1994. 문학사상), 제9시집 『수저통에 비치는 노을』 (1998. 시와시학사), 제10

시집 『파천무』(2001. 문학과경계사), 제11시집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시학사), 제12시집 장편서사시 『달궁 아리랑』(2010. 종려나무), 제13시집 『하늘을 나는 자전거』, 제14집 『빨치산』 등이 있음.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제1회 영랑시문학상(2003),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을 수상.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