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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하림 시인 / 서 있는 사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0.

최하림 시인 / 서 있는 사람

 

 

모든 구름이 달리고 달려서

가로수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오늘밤에는 어디로인지 난리처럼 가는데

아직도 너는 붉은 등 아래 서 있구나

통금이 다가온 거리 빈 거리

어둠이 자라 꽃이 되고

더러운 잠자리로 사내들이 들어가고

계집들이 천한 꿈에 시달리는데 아아 깊은

바다의 등불 아래 시름을 두고

아직도 너는 하늘을 우러르나

어느 한자락 구름이 네 맘을 담지 못하누나

 

작은 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최하림 시인 / 설야(雪夜)

 

 

하늬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밤 그이는 하마

취비강을 건너갔을까 보내는 이들이 밤을

설치며 그리는 그 얼굴  그 눈동자가

가슴에 불붙어 타오르는데

그이는 수많은 노두를 건너서 바람과 눈보라를

헤치고 무사히 자유에 발 디뎠을까

슬퍼라 어둔 지방의 인내를 버리고

사나이들은 사랑을 찾아 고단한 육신으로 산과 내를 건너가는데

밤 물길을 끌고 지친 화적패처럼 건너가는데

음산한 지방을 새하얗게 물들이면서

때묻은 말을 버리고 내리는 눈 눈 눈

눈이여 오만 가지 죄의 모습과 인욕을 씻고

가는 이의 사랑을 따라나서는 길을 마련하라

구석구석이 허사로 가득한 밤

우리들은 허사에서 배어나오는 암흑을 보며

암흑 속에서 승냥이처럼 울부짖는다.

울부짖음이 암흑 속으로 사라져 암흑이 되어 돌아온다

암흑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눈보라 속으로 몰아 넣는다

 

우리들을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76

 

 


 

최하림[崔夏林,1939.3.7 ~ 2010,4.22]  시인

1939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貧弱한 올페의 回想〉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겨울 깊은 물소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풍경 뒤의 풍경』,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와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판화 시선집 『겨울꽃』, 자선 시집『침묵의 빛』 그리고 시전집 『최하림 시 전집』 등이 있음 그 밖에 미술 산문집 『한국인의 멋』, 김수영 평전『자유인의 초상』과 수필집 『숲이 아름다운 것은 그곳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최하림 문학산책 『시인을 찾아서』 등을 펴냄. 제11회 이산문학상,

제5회 현대불교문학상, 제2회 올해의 예술상 문학 부분 최우수상 수상. 전남일보 논설위원, 서울예술대학 교수 역임. 2010년 간암으로 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