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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택 시인 / 산동네의 밤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 출처 : 윤성택, 『리트머스』, 문학동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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