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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성택 시인 / 산동네의 밤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30.

윤성택 시인 / 산동네의 밤

 

 

춥다, 웅크린 채 서로를 맞대고 있는

집들이 작은 창으로 불씨를 품고 있었다

가로등은 언덕배기부터 뚜벅뚜벅 걸어와

골목의 담장을 세워주고 지나갔다

가까이 실뿌리처럼 금이 간

담벼락 위엔 아직 걷지 않은 빨래가

바람을 차고 오르내렸다

나는 미로같이 얽혀 있는 골목을 나와

이정표로 서 있는 구멍가게에서 소주를 샀다

어둠에 익숙한 이 동네에서는

몇 촉의 전구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매달 수 있는 것일까

점점이 피어난 창의 작은 불빛들

불러모아 허물없이 잔을 돌리고 싶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먼 불빛이었구나

따스하게 안겨오는 환한 불빛 아래

나는 수수꽃처럼 서서 웃었다

보일러의 연기 따라 별들이

늙은 은행나무 가지 사이마다 내려와

불씨 하나씩 달고 있었다.

 

• 출처 : 윤성택, 『리트머스』, 문학동네, 2006.

 

 


 

 

 윤성택 시인

그는 파주시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시인으로 2001년 《문학사상》가 수여하는 신인시인상 문학상을 수상한 뒤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시집 리트무스(2006).『감(感)에 관한 사담들』(2013)을 출간했다. 시에 대한 그의 리뷰는 『그 사람 건너기』(가쎄, 2013)와 『마음을 건네다』(북레시피, 2017)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시인협회에서 2014년 올해의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여러분은 그의 페이스북과 웹사이트 http://poemfire.com에서 더 많은 그의 작품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