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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승희 시인 / 꽃이 친척이다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2.

김승희 시인 / 꽃이 친척이다

 

 

오늘

시계 없는 시간이 파란 하늘로 흐를 때

뻐꾸기시계 소리가 새 달력 위로 쏟아질 때

초침이 머리칼을 지나 침대 아래로 녹아 떨어질 때

배가 새고 있어요

종잡을 수 없는 부르짖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 때

절벽 위에 핀 꽃들이 경련하며 쏟아질 때

 

종잡을 수 없는 종다리의 노랫소리가

종잡을 수 없게 숲을 흔들어놓고 사라질 때

그 종다리 소리에 피가 뛸 때

갑자기 꽃이 혈연이라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종잡을 수 없는 종다리 노랫소리가

땅도 시내도 나무도 산도 쪽빛 바다 갈대숲도

다 흔들어놓을 때

저녁에 산 너머로 뚝뚝 떨어지는 해도

 

그래, 죽음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 것인가

하늘도 구름도 땅도 바람도 아카시아 라일락 향기도

혈연보다 가까운 나의 일부

꽃이 친척이다, 느껴질 때

종잡을 수 없는 죽음은 종잡을 수 없게 가까이 와 있다

 

계간 『시와 사상』 2019년 여름호 발표

 

 


 

김승희 시인

1952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서강대학교 영문학과와 同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이상 시 연구>로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음. 1973년 《경향신문》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에도 당선. 시집으로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등이 있고, 그밖의 저서로는  산문집『33세의 팡세』, 『남자들은 모른다』,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등과  소설로는『산타페로 가는 사람』,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등이 있음.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