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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용 시인 / 돋보기 안경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4.

김신용 시인 / 돋보기 안경

 

 

  나무들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있다 달이 떴다

  주해(註解)는 언제나 풀벌레 소리처럼 작다 생의 원문을

  골격을 마치 깁스라도 하듯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작아진 것을 더 크게 보려는 노안(老眼)의 골조공사 같은 것

  명료함은 뚜렷한 윤곽의 것이지만 흐려보인다는 것은

  애매함 만이 아니라 사물을 재해석 하려는 것

  새롭게 의미의 거푸집을 짓는 것 그러므로 돋보기 안경은

  고고학적 사고를 지닌다 쓰레기 더미에서 뒹굴어 다니는

  녹슨 고철 따위도 목발을 짚고 걸어 나오게 한다

  그 정크아트적 상상력이 새롭게 망막의 윤곽을 열어주는, 돋보기 안경

  사람들은 그런 돋보기 안경을 근심스런 눈으로 쳐다보지만

  흐린 눈에 걸쳐진 불룩한 유리알 또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제 멀리 보지 않고 마치 근시처럼 가까이 다가감으로서

  생을 나무처럼 한 자리에 오래 붙박혀 있게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숲속의 패랭이꽃의 얼굴도 자세히 보려 한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점점 작아지는 사물의 의미를 더 크게 보려는, 노안(老眼)이

  남은 생의 주석처럼 쓰고 있는, 저 돋보기 안경

  이제 광활한 바다를 숲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제 발치에 깃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꼬물거리는 생의 주해들을 점자처럼 더듬으며

  귀 기울이지 않으면 지워지는 작은 소리들을 찾아, 척추를 곧추세워주려는

  나무들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있다 달이 떴다

 

계간 『詩로 여는 세상』 2012년 봄호 발표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1988), 『개 같은 날들의 기록』(1990), 『몽유 속을 걷다』(1998), 『환상통』(2005), 『도장골 시편』 (2007),  『바자울에 기대다』(2011), 『잉어』(2013) 등과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 1,2』『기계 앵무새』 (1997), ‘『달은 어디에 있나 1. 2』 <고백을 이 제목으로 재출간> (2003), 『새를 아세요?』(2014)  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문학상과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상과 같은 해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