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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시인 / 내 여자
당신은, 수수한 여자 같아요. 독감으로 몸져누운 날, 고열인 상태로 속삭임 들었습니다. 비몽사몽간 말허리 잘린 듯한 옛말이 뭔 뜻인가 싶었습니다. 잘해봐야 사려 깊은 그의 인사말일 뿐이었고 그 말이 내 여자란 말은 아니었건만, 제멋대로 사랑의 암시인가 하였습니다. 전화하면 문병을 올까, 나는 나에게 쉼없이 감추기를 강요하였겠지만 어느 쯤엔가는 들켜도 모른다 했겠지요. 저절로 생리 묻은 팬티인 듯 속옷을 갈아입고, 땀 식히고,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여름부터 기르는 수생 수국의 물을 갈아주었습니다. 그새 뿌리는 허송세월 없다는 듯 사방으로 뻗었지요. 그에게 보여주려던 화분인데 보는 이 없이 산홋빛 꽃만 커졌기에 그럴 바에야 다음해에나 꽃 보자 결론짓고, 꽃숭어리 분질러 꽂았던 겁니다.
기다림도 어느덧 수국 같아서 내 몸집보다 화려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뚝! 반절로 꺾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야 해 넘겨서까지 꽃 볼 수 있는 거였습니다. 온종일 소복처럼 간소한 차림으로 기다리자니 어쩐지 애처로운 모양새 같았습니다만, 마음 준 내 여자, 여자를 나는 올해도 홀가분히 내려놓진 못했습니다.
시집『다시없을 말』(문학수첩, 2019) 중에서
김윤이 시인 / 도마뱀
거기 서 달라 외쳤어 저녁 끼닛거리 해먹다말고 외론 마음 동쳐매고 빈들로 나갔어 네 뒤 바짝 벼르듯 틈새 길 도마뱀 밟았어 가시나 내 몸짓이 엉겁결에 짓뭉갰어 태양이 꺼져드는 순간에 꼬리 끊긴 섬도마뱀 횃불 타는 석양 속으로 배는 밀려갔어 뒷자락 붙들던 저녁처럼 난 어둡고 왜소해졌어 살갗 벗겨진 피부를 맨손으로 만질 때 도리 없이 알았어 가엾은 처지 나였어 36.5℃ 온기도 오금 저릴 심장도 잃은 거였어 검붉은 피와 뿜어대는 김 없이 불장난에 데인 상처만 꼬물거렸어 도마뱀은 아픈 살점 짧게 끊은 거였어 고작 핏대 세워 기어간 거였어 너 없는 나였어 나 잃은 나였어 문전걸식으로 벌레 구해먹던 도마뱀! 날 조심시키네 상처가 붙기 전 거동하면 도로 생은 상처에 끌려 다니지
태양이 동네를 한 바퀴 돌 참이 지났을까 어디메쯤 있는 게냐 가도 가도 내 머시마 남몰래 도지던 발병도 가져가라, 도륙하듯 끊는다했어 수천 떼비늘로 둥근 지평선 불타올랐어 건사 못한 맘 싣고 날마다 이 포구의 막배가 끊겼어 형체 없는 환지통이 꽁무니 길어졌어 불현듯 일용할 양식으로 외로움이 많아졌어
시집『다시없을 말』(문학수첩,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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