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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 / 감자
허허벌판 감자밭에 항아리만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감자를 캐다가 배가 고파서 감자더미에 올라앉아 감자를 혼자 구워먹고 있었다. 멀리서 한 사내가 고라니같이 뛰어왔다. 쫓기며 쫓기며 숨겨 달라고 했다.
여자는 감자 먹던 손으로 급한 김에 아래를 가리켰다. 고란이는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둘은 큰 항아리가 되었다.
총든 병사가 달려왔다. 여자는 감자 먹던 손으로 급한 김에 먼데를 가리켰다. 병사는 먼데로 사라지고
여자는 앉은 채로 흔들렸다. 산이 뒤뚱거렸다. 감자가 입으로 마구 들어갔다. 감자밭에 불길 치솟았다.
여자는 날마다 뚱뚱해졌다. 두엄만큼 되었다. 집더미만큼 되었다. 드디어 여자는 감자를 낳았다. 천년 동안 줄줄이 낳았다. 우리 지구에는 감자들로 가득해졌다. 닮은 감자들은 서로가 우스워서 맨날 웃었다.
총든 병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갔는가? 감자들은 가끔 생각했다.
찔레, 전예원, 1987
문정희 시인 / 겨울나무
열어주소서
눈 속에 슬픈 발을 묻고 저 나무들이 서서 울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神)의 터전에 바람이 휘몰아치면 삶은 꽃처럼 흔들립니다.
이곳은 어느 곳일까 제가 앉아서 입맞춘 소중한 모습.
이제 저의 두 눈이 멀어도 살이 터져서 닫을 수 없는 뜨거움을……
벗은 나무여, 벗은 나무여, 제 밀물을 소리치게 해주소서.
새떼, 민학사, 1975
문정희 시인 / 고향을 찾아서 2
가을도 아닌데 고향 사람들은 모두 낙엽되어 흩어져 있었다.
다리에 구렁이 같은 힘줄이 솟아 쌀 두 가마 등짐지던 사출이 아저씨도 이빨로 소주병을 까던 기훈이 오빠도 엉댕이가 맷돌 같던 쌀장수 화순댁도 모두 어김없이 낙엽이 되었다.
키다리 선출이 칠푼이 알밤이조차도 모두 낙엽이 되었다.
수북한 낙엽 속에서 용케 송장 메뚜기처럼 살아남은 이복 언니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날보고 그 자리에서 땅을 치며 통곡했다.
마른 갈비뼈 사이로 쉬잇쉬잇 해수병이 드나드는 목쉰 울음 속에 그녀는 내 이름 부르지 않고 30년 전에 죽은 울아버지 부르며 통곡했다.
내 슬픔 당당하게 뺏어들고 땅을 치며 먼저 울어버렸다.
나는 슬픔조차 빼앗겨 타관 사람처럼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찔레, 전예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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