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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도종환 시인 / 진눈깨비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17.

도종환 시인 / 진눈깨비

 

 

누이동생이 죽은 아기를 낳던 날 밤

진눈깨비가 내렸다.

영농기계대금이 밀려 보건소 언저리에도 못 가보고

먹는 것이 부실하여 성한 몸뚱이로 크지도 못한

손바닥만한 목숨을 얼어 가는 풀뿌리 밑에 묻고

씻기지 않는 새벽 노을을 손에 묻힌 채

처갓집 더부살이 더욱 기 꺾인 매제는

도시락도 없이 재건조장 일을 나갔다.

앞브레이크 끊어진 녹 낀 자전거

바퀴를 말없이 굴리며 방고개를 넘어갔다.

아버지는 부러 얼어터진 연탄 보일러 얘기만 꺼내고

어머니는 연신 머릿수건을 고쳐 쓰고 계셨다.

비도 되고 눈도 되며 내리는 것들을

바람은 자꾸 얼리며 오고

언 땅 깊은 곳의 어둠을 퍼올리던 삽 한 자루

흙냄새를 바람에 씻으며 기대 서 있었다.

 

玆菅Ì 마을에서, 창작과비평사, 1985

 

 


 

도종환 시인

1954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4년《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릉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등이 있고,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배』,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등과 동화 『바다유리』 등이 있음.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 수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