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 / 먼 바다
마을로 기우는 언덕, 머흐는 구름에
낮게 낮게 지붕밑 드리우는 종소리에
돛을 올려라
어디메, 막 피는 접시꽃 새하얀 마디마다
감빛 돛을 올려라
오늘의 아픔 아픔의 먼 바다에.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모일(某日)
1
쌀 씻는 소리에 눈물 머금는 미명(未明)
봉선화야
기껍던 일 그 저런 일.
2
노랗게 물든 미루나무 길섶 먼
고향길 해야 지는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사람들
느릿느릿 뒷짐 지르고 가는
모과(木瓜)빛 물든 길섶을 해야 지는가
3
들깨 냄새가 나는 울안
골마루 끝에 매미 울음 스몄는가
목을 늘여
먹던 금계랍의 쓴 맛.
싸락눈, 삼애사, 1969
박용래 시인 / 물기 머금 풍경 2
반쯤 들창 열고 본다.
드문드문 상고머리 솔밭 넘어가는 누런 해 반쯤만 본다. 잉잉 우는 전신주 귀퉁이에 매달린 연 꼬리 아슬히 비낀 소년의 꿈도
반의 반쯤만 본다.
비가 올 것인가.
눈이 올 것이다.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미닫이에 얼비쳐
호두 깨자 눈 오는 날에는
눈발 사근사근 옛말 하는데
눈발 새록새록 옛말 하자는데
구구샌 양 구구새 모양 미닫이에 얼비쳐
창호지 안에서 호두 깨자
호두는 오릿고개 싸릿골 호두.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버드나무 길
맘 천근 시름겨울 때 천근 맘 시름겨울 때 마른 논에 고인 물 보러 가자. 고인 물에 얼비치는 쑥부쟁이 염소 한 마리 몇 점의 구름 홍안(紅顔)의 소년(少年) 같이 보러 가자.
함지박 아낙네 지나가고 어지러이 메까치 우짖는 버드나무 길.
마른 논에 고인 물.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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