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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용래 시인 / 별리(別離)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6.

박용래 시인 / 별리(別離)

 

 

노을 속에 손을 들고 있었다, 도라지빛.

 

―그리고 아무말도 없었다.

 

손 끝에 방울새는 울고 있었다.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불도둑

 

 

하늘가에

내리는

황소떼를 보다

 

흐르는 흐르는

피보래의

눈물을 보다

 

불도둑

흉벽(胸壁)에

울리는 채찍

 

―산 자(者)의 권리는 너무 많구나.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불티

 

 

가을에 피는 꽃

겨울에도 핀다

할매가 지피고 돌

이가 지피고 노을

이 지피는 쇠죽가

마 아궁이, 아궁이

불 시새우는 불티

같은 사랑. 사랑사

겨울에 피는 가을

사르비아!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산견(散見)

 

 

해종일 보리 타는

밀 타는 바람

 

논귀마다 글썽

개구리 울음

 

아 숲이 없는 산(山)에 와

뻐꾹새 울음

 

낙타(駱駝)의 등 기복(起伏) 이는 구릉(丘陵)

먼 오디빛 망각(忘却).

 

싸락눈, 삼애사, 1968

 

 


 

 

박용래 시인 / 삼동(三冬)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새어나는 불빛이여 늦은 저녁

상(床) 치우는 달그락 소리여 비우고 씻는 그릇 소리여

어디선가 가랑잎 지는 소리여 밤이여 섧은 잔(盞)이여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새어나는 아슴한 불빛이여.

 

싸락눈, 삼애사, 1969

 

 


 

박용래 [朴龍來, 1925.8.14~1980.11.21] 시인

1925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강경 상업고등학교 졸업. 1955년 《현대문학》에 시 〈가을의 노래〉외 2편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중』(1980) 등과 시전집 『먼바다』(1984)가 있음. 1961년 제5회 충남문학상과 1969년 시집 『싸락눈』으로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과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