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시인 / 음화(陰畵)
몽당연필이 촘촘 그리는 낙엽, 서리, 서릿발의 입김. 땅재주 넘는 난장이. 불방망이 돌아 접시의 낙하(落下). 말발굽 소리. 촘촘 창틀에 그리는 새, 홍시, 홍시의 꼭지. 어려라. 콧등이 하얀 원숭이.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자화상(自畵像) 3
살아 무엇하리 살아서 무엇하리
죽어 죽어 또한 무엇하리
겨울 꽝꽝나무 꽝꽝나무 열매
울타리 밑의 인연
진한 허망일랑 자욱자욱 묻고
`소한(小寒)에서 대한(大寒)사이' 가출(家出)하고 싶어라 싶어라.
먼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잔(盞)
가을은 어린 나무에도 단풍 들어 뜰에 산사자(山査子) 우연듯 붉은데 벗이여 남실남실 넘치는 잔 해후(邂逅)도 별리(別離)도 더불어 멀어졌는데 종이, 종이 울린다 시이소처럼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장대비
밖은 억수 같은 장대비 빗속에서 누군가 날 목놓아 부르는 소리에 한쪽 신발을 찾다 찾다 심야의 늪 목까지 빠져 허우적 허우적이다 지푸라기 한 올 들고 꿈을 깨다, 깨다. 상금(尙今)도 밖은 장대 같은 억수비 귓전에 맴도는 목놓은 소리 오오 이런 시간에 난 우, 우니라 상아(象牙)빛 채찍.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저녁눈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싸락눈, 삼애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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