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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용래 시인 / 종(鍾)소리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3.

박용래 시인 / 종(鍾)소리

 

 

봄바람 속에 종(鍾)이 울리나니

꽃잎이 지나니

 

봄바람 속에 뫼에 올라 뫼를 나려

봄바람 속에 소나무밭으로 갔나니

 

소나무밭에서 기다렸나니

소나무밭엔 아무도 없었나니

 

봄바람 속에 종(鍾)이 울리나니

옛날도 지나니

 

싸락눈, 삼애사, 1969

 

 


 

 

박용래 시인 / 참매미

 

 

어디선가

원목(原木) 켜는 소리

 

석양(夕陽)에

원목(原木) 켜는 소리

같은

참매미

오동나무

잎새에나

스몄는가

골마루

끝에나

스몄는가

누님의

반짇고리

골무만한

참매미.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천(千)의 산(山)

 

 

댕댕이 넝쿨, 가시덤불

헤치고 헤치면

그날 나막신

쌓여 들어 있네

나비 잔등에 앉은 보릿고개

작두로도 못 자르는

먼 삼십리

청솔가지 타고

아름 따던 고사리순

할머니 나막신도

포개 있네

빗물 고인 천(千)의 산(山)

겹겹이네.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첫눈

 

 

눈이 온다 눈이 온다

담 너머 두세두세

마당가 마당개

담 너머로 컹컹

 

도깨비 가는지

`한숨만 참자'

낮도깨비 가는지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추일(秋日)

 

 

나직한

꽈리 부네요

 

귀에

가득

갈바람 이네요

 

흩어지는 흩어지는

기적(汽笛)

꽃씨뿐이네요.

 

싸락눈, 삼애사, 1969

 

 


 

 

박용래 시인 / 취락(聚落)

 

 

감나무 밑 풋보

리 이삭이 비

치는 물병 점

심(點心) 광주리 밭

매러 간 고무신

둘레를 다지는

쑥국새 잦은목

반지름에 돋는

물집 썩은 뿌

리 두지면 흩

내리는 흰 개

미의 취락(聚落) 달

팽이 꽁무니에

팽팽한 낮이슬.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朴龍來, 1925.8.14~1980.11.21] 시인

1925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강경 상업고등학교 졸업. 1955년 《현대문학》에 시 〈가을의 노래〉외 2편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중』(1980) 등과 시전집 『먼바다』(1984)가 있음. 1961년 제5회 충남문학상과 1969년 시집 『싸락눈』으로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과 1980년 제7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