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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현승 시인 / 형광등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8.

김현승 시인 / 형광등

 

 

갑자기 밝아지면

스스로도 눈이 부신 듯,

깜빡깜빡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켜지는……

 

더 밝으면서도

밝음과

겸양의

수줍은 이 불빛.

 

달빛을 떠난 지 오래이면서도

아주까리 호롱불보다도

더 달빛에 가까이 가려는

파르스럼한

정교한 손으로 만든 이 불빛.

 

번쩍번쩍 먼 데서 높은 데서

다만 비춰준다고 여기기보다는,

고요히 다정히 언어 속에 스며들며

가을 밤을 더 깊어 가게 하는……

 

기쁨 속에 슬픔이 스며들고

슬픔 속에 기쁨이 스며들어,

다만 참되고 아름다운 하나의 언어만이

되게 하는……

 

상하기 쉬운

영혼을 간직하기 위하여

팔리지 않는 책을 사랑하고,

그 책을 사랑하기 위하여

또 눈을 보호하여 주는,

이 부드러운―내 책상머리에서

나와 함께 이 밤을 지키는 불빛……

 

김현승 시전집, 관동출판사, 1974

 

 


 

 

김현승 시인 /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온 세계는

황금으로 굳고 무쇠로 녹슨 땅,

봄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않고

새소리도 날아왔다

씨앗을 뿌릴 곳 없어

날아가 버린다.

 

온 세계는

엉겅퀴로 마른 땅,

땀을 뿌려도 받지 않고

꽃봉오리도

머리를 들다

머리를 들다

타는 혀끝으로 잠기고 만다!

 

우리의 흙 한 줌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가슴에서 파 낼까?

 

우리의 이슬 한 방울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눈빛

누구의 혀끝에서 구할까?

 

우리들의 꽃 한 송이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얼굴

누구의 입가에서 구할까?

 

마지막 지상에서, 창작과비평사, 1975

 

 


 

 

김현승 시인 / 희망

 

 

나의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 같은 손을 기다리고,

 

너의 희망,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나의 희망,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너의 희망,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우리에게 한 번 주어 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神)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마지막 지상에서, 창작과비평사, 1975

 

 


 

 

김현승 시인 / 희망에 부쳐

 

 

희망은 가장 멀리 가는 내 마음의 뱃머리,

우리가 더 붙들 수도 없는 그곳에선

까뭇까뭇 꿈을 꾸는

한 점 생명의 씨앗으로

망막한 바다에 떨어진다.

 

희망은 가장 깊이 묻힌 내 마음의 순금,

분별의 오랜 금언들 깨어져 골짝에 잠들고

사자의 울음을 부르는 수풀들 우거지면

너의 빛은 불 같은 손을 기다리며

한 줄기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이

소리 없이 빈 들에 묻힌다.

 

희망은 가장 높이 뜨는 내 마음의 흰 구름,

우리가 너를 붙들러 산마루에 오르면

더욱 높은 곳으로 우리를 끄을며

너는 갖가지 꿈들에 형상을 입혀

우리의 눈을 즐거움에 어둡게 만든다.

 

희망은 가장 아름다운 내 마음의 떨기꽃

낙엽은 떨어져 뿌리에 돌아가고

그 뿌리들 다시 꽃의 무덤가에 잠들 때에도

너는 내 생명의 줄기 그 가장 가녀린 꽃에서

눈부시게 타오른다 타오른다.

 

마지막 지상에서, 창작과비평사, 1975

 

 


 

 

김현승 시인

(金顯承,1913.2.28 ~ 1975.4.11)

 

 

 

 

그는 목사인 아버지 김창국(金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사이에서 1913년 4월 4일 아버지의 신학유학지인 평양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이 평양신학교를 마치고 제주도 성내교회를 거쳐 광주로 오게되자 그는 광주 숭일초등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중학에 진학하기 까지 10년간 광주에서 살았다. 그가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32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이 학교에는 양주동과 이효석이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에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 교지(校誌)에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했다. 이어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아침」,「황혼」,「새벽교실」등을 계속 발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앙시와 양심의 시를 개척했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관념의 세계를 신앙적 정면대결 정신으로 극복하였고, 윤리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자아 탐구에 고뇌, 끝내는 신의 절대주의적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시의 중심 사상이 된 고독은 신을 잃어 버렸기 때문인데 그는 여기에서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는 자아 탐색을 통하여 인간 생명과 진실을 노래,보편적 진리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나타내어 주목을 끌었다.

 

특히 그는 사상이 없는 시는 무정란이라는 시론까지 전개하며 사상과 시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종교와 철학의 추상과 관념을 물화하여 형이상성으로 시를 감각화했다. 투명한 언어의 엄격성,함축미,간결한 정제미 등은 그의 시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붓을 꺾고 침묵을 지키다가 8·15광복 후 1949년부터 다시 작품을 발표, 「내일」 「동면(冬眠)」 등 지적이고 건강한 시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1951년부터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로 있으면서 박흡(朴洽)·장용건(張龍健) 등과 함께 『신문학(新文學)』(계간)을 6집까지 발행, 향토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957년에 처녀시집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를 간행하고, 1963년에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 1968년에 제3시집 『견고한 고독』, 1970년에 제4시집 『절대고독』을 간행했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자연의 예찬을 통한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띠었으나, 8·15광복 후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보여 주었고, 말기에는 사랑과 고독 등 인간의 본질을 추구했다. 1973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았고 1974년 『김현승 시선집』을 출간했다.

 

조선대학교·숭실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61년 한국문인협회 이사로 뽑혔다.

 

 


 

김현승(金顯承,1913 ~ 1975) 시인

1913년 평양에서 출생. 숭실전문학교 졸업.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스승 양주동의 소개로 1934년 5월 25일 《동아일보》 문화란에 발표하며 시문단에 데뷔. 첫시집 『김현승 詩抄』(1957) 이후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 『절대 고독』(1970), 『김현승시선집』(1974) 등의 시집과 평론집 『한국현대시해설』(1972) 등을 간행. 전라남도문화상·서울시문화상 수상. 1975년 작고 후 시집 『마지막 지상에서』(1975)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