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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모윤숙 시인 / 무덤에 내리는 소낙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1. 18.

모윤숙 시인 / 무덤에 내리는 소낙비

 

 

썩은 냄새에 몸이 저리다

헐린 무덤 새에

번개에 몰리는 소나기 내리는 밤

짙은 칠빛으로 웅웅거리고

파도 같은 바람이 머리올을 끄은다

 

해골이 고운 옷을 입고

요녀처럼 웃는다

그는 다시 옷을 벗고

길다란 엿가락이 되어 입을 벌린다

 

몸은 벌써 석고처럼 굳었건만

마음은 살아 무서움과 싸운다

 

차라리 나는 진비를 맞으며

시체 곁에 죽음을 빈다.

 

풍랑, 문성당, 1951

 

 


 

 

모윤숙 시인 / 묵도(黙禱)

 

 

나에게 시원한 물을 주든지

뜨거운 불꽃을 주셔요

덥지도 차지도 않은 이 울타리 속에서

어서 나를 처치해 주셔요

 

주여, 나를 이 황혼 같은 빛깔에서 빼어 내시와

캄캄한 저주를 내리시든지

광명한 복음을 주셔요

이 몸이 다아 시들기 전에 오오 주여!

 

빛나는 지역, 조선장문사, 1933

 

 


 

 

모윤숙 시인 / 물 긷는 색시

 

 

아침의 나라 백두하반(白頭河畔)에

전설을 안고 도는 여신과도 같이

물동이 허리에 휘감긴 팔목

그는 조선의 얌전한 아낙네러라

 

*

 

감싸서 돌린 치마 바쁜듯 팔랑이고

쪽진 머리 석양에 유난히도 아름다워

하늘가에 한가히 떠도는 그 눈

그는 피어 오른 한 개의 장미 같구나

 

*

 

떠오르는 샘 속에 쪽바가지 자주 넣어

날마다 물동이 채워 가나니

온 집안 식구의 생명의 선을 가진

어여쁠사 이 땅의 물 긷는 아낙네여!

 

옥비녀, 동백사, 1947

 

 


 

모윤숙(毛允淑) 시인 / 1910년-1990년

호는 영운(嶺雲). 1910년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태어나 함흥에서 자랐다. 1931년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35년 경성제국대학 영문과 선과(選科)를 수료. 그뒤 월간 《삼천리(三千里)》와 중앙방송국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였고, 1933년 첫 시집 《빛나는 지역》, 1937년 장편 산문집 《렌의 애가》를 출간하였다.  8.15광복 뒤에는 문단과 정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해, 1948년에는 월간문예지《문예》를 발간하는 한편, 1948·1949년에는 국제연합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장, 1954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강사 및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을 거쳐 195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1년 8대국회에 민주공화당 전국구 대표로 당선되었고,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장(1973), 통일원 고문(1974), 펜클럽

한국본부 회장(1977), 문학진흥재단 이사장(1980)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 예술원상, 3·1문화상 등을 받았고, 저서에는 《모윤숙 전집》《논개》《렌의 애가》 등이 있다. 196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1970), 1979년 3·1문화상을 받았고, 199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