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 / 추성(秋聲)
푸라타나쓰의 표정이 어느 틈에 이렇게 달라졌나
하늘을 쳐다본다 청징한 바닷가에 다시 은하가 맑다 눈을 땅으로 떨어뜨리며 내가 당황하다
창변, 매일신보사, 1945
노천명 시인 / 춘분
한고방 재어 놨던 석탄이 휑하니 나간 자리 숨었던 봄이 드러났다
얼래 시골은 지금 뱀 나왔갔늬이
남쪽 계집아이는 제 집이 생각났고 나는 고양이처럼 노곤하다
창변, 매일신보사, 1945
노천명 시인 / 춘향
검은 머리채에 동양여인의 `별'이 깃든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실라우 벽에 그린 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탁탁 치고 꼭꾜하면 오실라우 계집의 높은 절개 이 옥지환과 같을 것이오 천만 년이 지나간들 옥빛이야 변할납디여"
옥가락지 위에 아름다운 전설을 걸어 놓고 춘향은 사랑을 위해 달게 형틀을 졌다
옥 안에서 그는 춘(椿)꽃보다 더 짙었다
밤이면 삼경을 타 초롱불을 들고 향단이가 찾았다 춘향 "야아 향단아 서울서 뭔 기별 업디야" 향단 "기별이라우? 동냥치 중에 상동냥치 돼 오셨어라우" 춘향 "야야 그것이 뭔 소리라냐― 행여 나 없다 괄세 말고 도련님께 부디 잘해 드려라"
무릇 여인 중 너는 사랑할 줄 안 오직 하나의 여인이었다
눈 속의 매화 같은 계집이여 칼을 쓰고도 너는 붉은 사랑을 뱉어 버리지 않았다 한양 낭군 이도령은 쑥스럽게 `사또'가 되어 오지 않아도 좋았을 게다
창변, 매일신보사,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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