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 /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닷돈짜리 왜떡을 사 먹을 제도 살구꽃이 환한 마을에서 우리는 정답게 지냈다
성황당 고개를 넘으면서도 우리 서로 의지하면 든든했다 하필 옛날이 그리울 것이냐만 늬 안에도 내 속에도 시방은 귀신이 뿔을 돋쳤기에
병든 너는 내 그림자 미운 네 꼴은 또 하나의 나
어쩌자는 얘기나, 너는 어쩌자는 얘기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별을 쳐다보며, 희망사, 1953
노천명 시인 / 어떤 친구에게
같은 별 아래 태어난 여인이기에 너와 나는 함께 울었고 같이 웃었다 너를 찾아 밤길을 간 것도 내 가슴을 펼 수 있는 네 가슴이었기―
대학 교정에서 그대를 만났을 제 내 눈은 신록을 본 듯 번쩍 띄었고 손길을 잡게 되던 날 내 가슴은 뛰었었나니 그대와 나는 자매별모양 빛났더니라
어떤 사람 너를 더 빛난다 했고 다른 이 또 나를 더 좋다 했다
너와 나 같은 동산에 서지 않았던들 너 나를 이런 곳에 밀어 넣지는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얼마나 더 정다웠으랴
별을 쳐다보며, 희망사, 1953
노천명 시인 / 자화상
5척 1촌 5푼 키에 2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전시대(前時代)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 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고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 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삼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고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꺾어는 질지언정
구리[銅]처럼 휘어지며 꾸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산호림, 자가본,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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