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시인 / 사월의 노래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라일락 아래로
푸른 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픈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랑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열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러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굴의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산호림, 자가본, 1938
노천명 시인 / 산염불(山念佛)
산염불소리 꺾이어 넘어가면 커―단히 떠오르는 얼굴 있어 우정 산염불 틀어 놓고는 우는 밤이 있어라
비인 주머니하고 풀 없이 다니던 일 쩌릿하니 가슴에다 못을 친다 지금쯤 어늬 쥐도 새끼를 안 친다는 그 땅광에서 남쪽 한늘 그리며 큰눈 꺼벅이고 있는지 겁먹은 눈을 뜬 채 또 쓰러져 버렸는지―
별을 쳐다보며, 희망사, 1953
노천명 시인 / 소녀
`어디를 가십니까' 노타이 청년의 평범한 인사에도 포도주처럼 흥분함은 무슨 까닭입니까 머지 않아 아가씨 가슴에도 누가 산도야지를 놓겠구려
산호림, 자가본, 1938
노천명 시인 / 수수 깜부기
깜부기는 비가 온 뒤라야 잘 팼다 아이들이 깜부기를 찔러 참새떼처럼 수수밭으로들 밀려갔다
밭고랑에 가 들어서 꼭대기를 쳐다보다
희끗 깜부기를 찾아내는 때는 수숫대는 사정없이 휘며 숙여졌다
깜부기를 먹고 난 입은 까암해 자랑스러웠다
창변, 매일신보사,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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