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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병기 시인 / 별 -1-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7.

이병기 시인 / 별 -1-

 

 

홀로 밤을 지켜 바라던 꿈도 잊고

그윽한 이 우주(宇宙)를 가만히 엿보고

빛나는 별을 더불어 가슴 속을 밝힌다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이병기 시인 / 별 -2-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작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이병기 시인 / 보리

 

 

눈 눈 싸락눈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눈

 

연일 그 추위에 몹시 볶이던 보리

그 참한 포근한 속의 문득 숨을 눅여 강보에 싸인 어린애마냥 고이고이 자라노니

 

눈 눈 눈이 아니라 보리가 쏟아진다고 나는 홀로 춤을 추오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 시인 / 봄 2

 

 

봄날 궁궐(宮闕)안은 고요도 고요하다

어원(御苑) 넓은 언덕 버들은 푸르르고

소복(素服)한 궁인(宮人)은 홀로 하염없이 거닐어라

 

썩은 고목 아래 전각(殿閣)은 비어 있고

파란 못물 우에 비오리 한 자웅(雌雄)이

온종일 서로 따르며 한가로이 떠돈다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李秉岐) 시인 / 1891∼1968

호: 가람(伽藍). 시조 시인. 국문학자. 전북 익산에서 출생. 1913년에 관립 한성 사범 학교를 졸업하고, 보통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고문헌 수집과 시조 연구에 전념하였다.1921년에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하였고, 1926년에 <시조란 무엇인가>를 발표한 이래 현대 감각의 시조로 침체된 시조 문학을 크게 일으켰다. 1930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위원을 거쳐 1935년에는 조선어 표준어 사정 위원이 되었고, 그 후에<가람 시조집>을 발표, 자연의 생생한 묘사를 통하여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1942년에는<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어 1년여 동안 복역하다가 석방된 후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면서 고문헌 연구에 몰두하였다. 광복 후 상경하여 미군정청 편찬과장,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교수 등을 거쳐 1954년에는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그 해 백철과 공저

로 <국문학 전사>를 간행하였다. 그는 현대 자유시에 압도된 시조의 부흥에 큰 공헌을 하였고, 저서에는 <국문학 개론> <가람 문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