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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오상순 시인 / 구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6.

 오상순 시인 / 구름

 

 

흘러가는 구름

따라가던 나의 눈

자취 없이 스스로 사라지는

피녀(彼女)의 환멸(幻滅) 보는 순간(瞬間)에

슬며시 풀어지며

무심(無心)히 픽 웃고

잇대어

눈물 짓다…….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오상순 시인 / 나와 시(詩)와 담배

 

 

나와 시(詩)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三位一體)

 

나와 내 시혼(詩魂)은

곤곤(滾滾)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曲線)의 선율(旋律)을 타고

영원(永遠)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刻刻) 물들어 스며든다.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오상순 시인 / 나의 스케치

 

 

나의 귀는 소라인양

항상(恒常) 파도(波濤)소리의 그윽한 여운(餘韻)을 못 잊고

 

나의 눈은 올빼미인양

고동(鼓動)하는 밤의 심장(心臟)을 노린다.

 

나의 코는 사냥개마냥

사향(麝香)의 지나간 자취를 따라

심산(深山)과 유곡(幽谷)을 더듬어 헤매이고

 

나의 입은 거북마냥

담배연기 안개를 피워

일체(一切)의 잡음(雜音)과 부조리(不條理)와

일체(一切)의 중압(重壓)과 불여의(不如意)를

가슴 깊이 안은 채

 

나와 나 아닌 것의 위치(位置)와 거리(距離)와 간극(間隙)을

자유(自由)로 도회(蹈晦)하고 조절(調節)하여

하나의 조화(調和)의 세계(世界)를 창조(創造)하여

그 제호미에 잠긴다.

 

공초오상순시선(空超吳相淳詩選), 자유문화사, 1963

 

 


 

 

오상순 [吳相淳, 1894.8.9 ~ 1963.6.3] 시인

1894년 서울에서 출생. 호는 공초(空超). .1906년 경신 학교(儆新學校) 졸업. 1918년 도시샤(同志社) 대학 종교철학과 졸업. 1920년 김억(金億), 남궁벽(南宮壁), 염상섭(廉想涉), 변영로(卞榮魯), 황석우(黃錫禹) 등과 함께 《폐허》의 동인으로 그 창간호에 〈시대고와 희생〉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1924년 보성 고등 보통 학교의 교사를 거쳐 1930년 불교 중앙 학림(동국 대학교의 전신) 교수 역임.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 1959년 예술원상, 1962년 서울특별시문화상과 대통령상 등을 수상. 1963년 지병으로 사망. 주요작품으로 「한잔술」, 「첫날밤」,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 「폐허의 낙엽」 등이 다수 있음. 저서로는 死後 발간된  《오상순 시선》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