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시인 / 비 1
모종의 오뉴월이 가물고 더위러니 시원한 비 한번에 만인(萬人)이 웃음이네 마르던 삼천리(三千里) 안의 산(山)도 들도 다 웃네
다만 빗소리요 저녁은 고요하다 어느 때 날아왔나 시렁에 앉은 제비 고개를 자옥거리며 젖은 깃을 다듬네
비는 오다 마다 구름은 갈아들고 이따금 왜가리는 북(北)으로 날아가니 장마나 아닌가 하고 다시 하늘 바라보네
모기는 한두 마리 전등(電燈)에 부딪히고 비인 마루 우에 고양이 자욱이다 누워도 잠이나 오랴 내 무엇이 그리워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이병기 시인 / 비 3
고운 돌과 물은 이르는 골마다로라 보고 잠착하여 저물어 돌아오다 갑자기 비를 맞으며 선방(禪房) 찾아드노라
선방(禪房) 한모르에 승은 조을고 있고 가늘게 나리던 비 소리 점점 굵어지고 나무 숲 울밀한 속에 어둔 빛은 짙어라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이병기 시인 / 비
밤은 깊어지고 비는 줄줄 내린다 타던 거문고 한옆에 비껴 놓고 무단히 눈물지으며 누를 그려 하는고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기 시인 / 서향(瑞香)
어두운 깊은 밤을 나는 홀로 앉았노니 별은 새초롬히 처마 끝에 내려보고 애연한 서향(瑞香)의 향은 흐를 대로 흐른다
밤은 고요하고 천지(天地)도 한맘이다 스미는 서향(瑞香)의 향에 몸은 더욱 곤하도다 어드런 술을 마시어 이대도록 취하리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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