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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인 / 학살 1
오월 어느 날이었다 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은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군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 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미래사, 1991
김남주 시인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미래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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