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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 / 음악
음악 그 위험한 바다에 빠졌었네 고단한 도취에 울어버렸네
살아 보아도 내 하늘에 무궁한 구름은 애상(哀傷), 많은 시(詩)를 썼으나 어느 한 귀절도 나를 건져 주지 못했다
사람 하나 그 복잡한 미혹(迷惑)에 반생을 살고 나머지 쉽사리 입는 상처의 버릇
눈 오는 숲 나무들의 화목처럼 어진 일몰 후 편안한 밤처럼…… 있고 싶어라
참말은 무섭고 거짓말은 부끄러워
음악 그 고단한 도취에 울어버렸네 아무 말도 아닌 진실 때문이었네
김남조 시전집, 서문당, 1983
김남조 시인 / 이인칭
여자 한평생 꿈에나 생시에나 옷고름에 꿰어찬 옥 같은 소원 하나, 이인칭의 이름 하나, 지녀줄 이 없어 서럽다 서럽다더니 세월 따라 낡아진 의관 한 벌도 누구 입어줄 이 없어 덧없다 덧없다더니
오뉴월 산역(山役)에 생피 한 동이 쏟고 난 후 그 한(恨)이 풀렸는가 어디에도 가지 않는 임 하나 챙겼는가
바람세계, 문학세계사, 1988
김남조 시인 / 임
1
임의 말씀 절반은 맑으신 웃음 그 웃음의 절반은 하느님 거 같으셨다 임을 모르고 내가 살았더면 아무 하늘도 안 보였으리
2
그리움이란 내 한몸 물감이 찍히는 병
그 한번 번갯불이 스쳐간 후로 커다란 가슴에 나는 죽도록 머리 기대고 싶다
3
임을 안 첫 계절은 노래에서 오고 그래 줄곧 시만 쓰더니 그 다음 또 한 철은 기도에서 오고 그래 줄곧 손 씻는 마음
어제와 오늘은 말도 잠자고 눈 가득히 귀 가득히 빛만 받고 있다
풍림의 음악, 정양사, 1963
김남조 시인 / 잠
그의 잠은 깊어 오늘도 깨지 않는다
잠의 집 돌벽 실하여 장중한 궁궐이라 하리니 두 짝 문 맞물려 닫고 나는 그 충직한 문지기라
숙면의 눈시울이여 평안은 끝없고 만상의 주인이신 분이 잠의 은사(恩賜)를 그에게 옷입히시니 자장가 없이도 잠은 더욱 깊어라
그의 잠은 깊고 잠의 평안 한바다 같아라 잠의 은사를 배례하리니 세월이 흘러 내가 잠들 때까지 잠을 섬기는 나는 그 불침번이리
바람세계, 문학세계사, 1988
김남조 시인 / 정념의 기(旗)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 없는 것모양 걸려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래펄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정념의 기, 정양사,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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