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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휘민 시인 / 라운드업 레디

by 파스칼바이런 2020. 3. 8.

휘민 시인 / 라운드업 레디

 

 

내 몸속에 비료 먹은 개구리가 살아요

내 몸속에 다리 세 개 달린 방울뱀이 살아요

내 몸속에 입이 엉덩이보다 큰 원숭이가 살아요

 

내 몸속 개구리와 뱀과 원숭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초대받지 않은 식탁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조리대 사이를 기어 다니며 방울소리를 내고

내가 먹으려는 바나나 껍질을 먼저 벗기기도 해요

 

그들과 함께 사는 일은 좀 성가신 일이지만

가끔은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나는 콘샐러드를 먹다가도 입 안에서 터지는 옥수수알갱이가

어쩌면 개구리의 눈동자일지도 모른다는 탱글탱글한 몽상을 즐겨요

순두부 속에 갈라진 뱀의 혓바닥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고

두개골이 열린 채 골수를 파먹히고 있는 원숭이의 긴 꼬리가 손끝에서 만져지기도 해요

 

그러나 내 몸속에서 와글거리는 개구리와 뱀과 달리 나는

너무나, 정말이지 너무나도, 식물적이어서 내가

개구리 쓸개를 삼킨 뱀의 위장을 씹어 먹고 있는 원숭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하지요

 

그런데 콩고기를 씹을 때마다 구운 뱀 껍질 냄새가 나는 건 왜일까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내 안의 욕심 많은 동물들은

왜 자꾸 초록 잎사귀들을 시뻘건 창자 속으로 끌어갈까요

 

나는 채식주의자인데 웬일인지 점점 포악해지고 있어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은데 아직 더 잃어야 할까요

개정판 식물도감을 뒤적여봤지만 오늘도 라운드업 레디는 멀기만 해요

이 행성의 씨앗들은 날마다 자살을 파종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나는 꽃술을 흔드는 바람처럼 다가올 천국을 기록해야 해요

동굴의 깊은 어둠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있는 엘리야처럼

 

※ 라운드업(Roundup)은 몬산토가 생산하는 강력한 제초제,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는 라운드업 제초제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된 유전자변형 콩‧옥수수의 상표

 

계간『문학청춘』 2019년 봄호 발표

 

 


 

휘민 시인

1974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시집으로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가 있고, 동화집 『할머니는 축구선수』와 그림책 『빨간 모자의 숲』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