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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민 시인 / 라운드업 레디
내 몸속에 비료 먹은 개구리가 살아요 내 몸속에 다리 세 개 달린 방울뱀이 살아요 내 몸속에 입이 엉덩이보다 큰 원숭이가 살아요
내 몸속 개구리와 뱀과 원숭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초대받지 않은 식탁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조리대 사이를 기어 다니며 방울소리를 내고 내가 먹으려는 바나나 껍질을 먼저 벗기기도 해요
그들과 함께 사는 일은 좀 성가신 일이지만 가끔은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나는 콘샐러드를 먹다가도 입 안에서 터지는 옥수수알갱이가 어쩌면 개구리의 눈동자일지도 모른다는 탱글탱글한 몽상을 즐겨요 순두부 속에 갈라진 뱀의 혓바닥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고 두개골이 열린 채 골수를 파먹히고 있는 원숭이의 긴 꼬리가 손끝에서 만져지기도 해요
그러나 내 몸속에서 와글거리는 개구리와 뱀과 달리 나는 너무나, 정말이지 너무나도, 식물적이어서 내가 개구리 쓸개를 삼킨 뱀의 위장을 씹어 먹고 있는 원숭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하지요
그런데 콩고기를 씹을 때마다 구운 뱀 껍질 냄새가 나는 건 왜일까요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내 안의 욕심 많은 동물들은 왜 자꾸 초록 잎사귀들을 시뻘건 창자 속으로 끌어갈까요
나는 채식주의자인데 웬일인지 점점 포악해지고 있어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은데 아직 더 잃어야 할까요 개정판 식물도감을 뒤적여봤지만 오늘도 라운드업 레디는 멀기만 해요 이 행성의 씨앗들은 날마다 자살을 파종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나는 꽃술을 흔드는 바람처럼 다가올 천국을 기록해야 해요 동굴의 깊은 어둠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있는 엘리야처럼
※ 라운드업(Roundup)은 몬산토가 생산하는 강력한 제초제, 라운드업 레디(Roundup Ready)는 라운드업 제초제에 저항력을 가질 수 있도록 설계된 유전자변형 콩‧옥수수의 상표
계간『문학청춘』 201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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