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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시인 / 쥐와 굴
쥐는 무릎을 만들고 있다 누가 시끄럽게 구는 게냐? 실링팬 아래에서 노인이 외칠 때 쥐는 앞니로 자기 무릎을 만들고 있다
노인이여, 당신만 주인이 아닙니다 집세를 안내는 나도 주인이라고요 티브이 소리나 좀 키워보시죠
쇠고리에 걸어 둘 한 솥 뼈만 남은 노인이여 공기처럼 소파 위에 얹어 놓은 무릎이여
내 부모 래리, 마리
그들은 회분홍 발목을 내주었지 나는 그 가는 발목에 뺨을 대고 눈꺼풀을 내렸다 바짝 선 내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가, 이제 수염을 편히 내리렴”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는 일
화면 속엔 바티칸의 검은 연기 피어오르고 “교황 선출이 불발되었습니다”(노인과가 쥐가 기침한다)
마침내 흰 연기와 쏟아지는 박수 상기된 추기경이 새 교황을 발표할 때
노인과 쥐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쥐는 지난주 먹은 굴을 생각한다 노인, 부엌에서 먹은 그 멋진 굴과 당신과 나,
이윽고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우리가 천사가 될 수 있다면
굴은 그런 곳을 허락할까
무릎과 발목, 심장이나 얼굴이 굴처럼 생긴
쥐는 차갑고 쥐는 레몬과도 어울리는 그런 영혼을 생각한다
쥐는 무릎을 완성한다
월간 『현대문학』 2018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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