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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아, 농사는 우리가 쎄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 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 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우리는 글먼 뭐여 신작로 내어놓응게 문뎅이가 먼저 지나간다고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혀서 원 아, 저 지랄들 헝게 될 일도 안된다고 올 농사도 진즉 떡 쪄먹고 시루 엎었어 아,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이사 바로 혀서 풍년만 들면 뭣 헐 거여 안 되면 안 되어 걱정 잘 되면 잘 되어 걱정 풍년 괴민이 더 큰 괴민이여 뭣 벼불고 뭣 벼불면 뭣만 남는당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따먹는 격이여 아, 그렇잖혀도 환장헐 일은 수두룩허고 헐 일은 태산 겉고 말여 생각허면 생각헐수록 이 갈리고 치떨리능게 전라도 논두렁이라고 말이 났응게 말이지만 말여 거, 머시기냐 동학 때나 시방이나 우리가 달라진 게 뭐여 두 눈 시퍼렇게 뜬 눈앞에서 생사람 잡아 논두렁에 눕혀놓고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똥 뀌고 성내며 사람 환장혀 죽겄는지 모르고 곪은 데는 딴 데다 두고 딴소리 허면서 내가 헐 소리 사돈들이 혔잖여 아, 시방 저그덜이 누구 땜시 호강 호강 허간디 호강에 날라리들이 났당게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 돋고 시원찮은 귀신이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맞는개비여 사람이 살며는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겄고 사람덜이 그러능게 아녀 뭐니뭐니 혀도 말여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허고 밥 아깐지 알아야 혀 시방 이 밥이 그냥 밥이간디 우리덜 피땀이여 피땀 밥이 나라라고 나라 자고로 말여 제 땅 돌보지 않는 놈들허고 제 식구 미워하는 놈들 성헌 것 못 봤응게 아, 툭 터놓고 말혀서 쌀금이 왜 이렇게 똥금인지 우린 모르간디 우리라고 뭐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창사도 없는 줄 알어 저그덜이사 뱃속이 따땃헝게 뱃속 편헌 소리들 허고 있는디 그 속 모르간디 그러고 말이시 거, 없는 집안 제사 돌아오듯 허는 그놈의 잔치는 왜 그리도 많혀 땡큐땡큐 하이하이 혀봐야 저근 저그고 우린 우리여 솔직히 말혀서 우리들 덕에 뭣 나발들 엥간히 불며 실속없이 남의 다리 긁지 말고 가려운 우리 다리나 착실히 긁어야 혀 그저 코쟁이야, 왜놈이야 허면 사족들을 못 쓴당게 사람들이 말여 쓸개가 있어야 혀 쓸개 아, 생각들 혀보드라고 여직 땅 갈라진 채로 이 지랄들이니 남 보기도 부끄럽고 챙피혀서 말여 긍게 언제까장 이 지랄발광헐 거여 긍게 긍게 북한이 외국이여 꺼떡하면 4천만 동포, 동포 허는디 아, 그러고 말이시 우리가 어디 한두 번 농사 망쳐봤어 쩍 허면 입맛 다시는 소리고 딱 하면 매맞는 소리 철부덕 허면 똥 떨어지는 소리여 거, 제미럴 헛배 부를 소리들 작작 허라고 아, 제미럴 우리는 뭐 흙 파먹고 농사 짓간디 고름이 피 안 되고 살 안 되ㅇ게 짤 것을 짜내야 혀 하나를 보면 열을 알겠더라고 새 세상에 새 칠로 말허겄는디 말여 그 속 들여다보이는 선거고 나발이고 아, 말이 났응게 진짜 말허겄는디 선거만 허면 질이여 거, 뭐여 그러면 민주냐고 민주가 뭣인지 잘 모르지만 말여 제미럴, 가다오다 죽고 총맞아 매맞아 죽고 엎어져 뒤집혀 죽고 곧 죽어도 말여 우린 넓디넓은 평야여 두고두고 보자닝게 군대식으로 혀도 너무들 허는디 우리는 말여 옛적부텀 만백성 뱃속 채워주고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고 논두렁은 비뚤어졌어도 농사는 빤듯이 짓는 전라도 농군들이랑게 고부 들판에 농군들이여 참 오래 살랑게 벼라별 험헌 꼴들 다 겪고 지금은 이렇게 사람 모양도 아닝 것맹이로 늙고 병들었어도 다 우리들 덕에 이만큼이라도 모다덜 사는지 알아야 혀 아뭇소리 안 허고 있응게 다 죽은 줄 알지만 말여 아직도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이여 농군.
섬진강, 창작과비평사, 1985
김용택 시인 / 모판같이 환한 세상
이런 세상을 살아보고 저런 세상을 살아봐도 이 산 넘으면 평자락 나올까 저 산 넘으면 평지가 나올까 이 산 넘고 저 산 넘고 넘고 넘고 또 넘어봐도 넘고 나며는 가파른 세상 태산준령 농사꾼 세상 이 고개 저 굽이 험한 굽이 고개 다 넘으면 저 험한 고개 앞을 가려 첩첩 험한 산 끝이 없네
논에 들며는 밭 걱정 밭에 들며는 논 걱정 집에 들어도 들 걱정 농사 짓고 나면 빚 걱정 시름 걱정도 많은 살림살이 걱정 걱정이 태산일세 고개 고개 굽이마다 한도 많은 농사꾼 세상 설운 한숨이 절로 나네 설운 눈물이 절로나 나네
이 고개 저 걱정 저 굽이 이 걱정 고개 고개를 넘어가세 굽이굽이를 돌아가세 호랭이 뜯어갈 이 놈의 세상 가세 가세 올라가세 근심 걱정 고개를 넘어가세 이 난리 저 난리 부황 든 난리 저 난리 이 난리 피 흘린 난리 자빠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험한 산비탈 올라 넘세 넘다 넘다 돌아가다가 험한 이 고개 넘어 돌다가 산비탈에 내 죽으면 저 산모랭이 내가 묻혀 살아온 저 세상 죽어 갈 저 세상 눈물로나 적시며 내 세상인 듯이 누울라네 평지인 듯 잠들라네.
어화 농부들아
어화 농부들아 저런 세상을 살아보고 이런 세상을 살아오며 이 고개 넘고 저 굽이 돌아 고개 굽이를 넘어보니 여기가 바로 평지일세 우리 사는 평지일세 농부들아 농부들아 어화어화 농부들아 험한 고개 험한 굽이 넘고 돌고 돌아보니 여기가 바로 평지일세 피도 뽑고 지심도 뽑아 이 논 저 논 물을 넣어 모판같이 환한 세상 어화 농군 세상을 만들어 가세 모판같이 고른 세상 우리 농군 세상을 만들어보세.
맑은 날, 창작과비평사, 1986
김용택 시인 / 문태환 약전
태환이 두 살 적에 홍역 앓고 딱지딱지 곰보딱지 되었지 세 살 때 난리 나고 난리통에 어머니 잃었네
곰보딱지란 놀림 속에 국민학교 4학년 때 월사금 없어 그만두고 남의 집 꼴머슴 되었지
열세 살 때 지게 마춰 지고 밥만 얻어먹는 머슴 되어 이 산 저 산 저 꽃산 애기나뭇짐 지었네
열일곱 때 남의 동네 머슴 가서 명절 때면 새 옷 입고 집에 왔다가 고향 산천 뒤돌아보며 눈물 뿌리고 주인집 갔었지 천덕꾸러기로 자라며 사랑방 구석에 처박혀 자며 주인집 아들 하숙짐 지어다 주고 빈 들 돌아오며 울었네
스물서너 살까지 이 동네 저 동네 머슴살이로 떠돌며 새경 모아 논 사고 밭 사고 장개갈 날 꿈꾸며 살았네
서른 살에 집에 돌아와 논 두 마지기 사서 뼈가 휘도록 농사지으며 여기저기 가는 데마다 초상집 대사집에 허드렛일 궂은일 다 해치우며 술자리에 늦게 들어 찌꺼기 거두어 먹으며 말없이 일 잘했었지
논 팔아서 소 키우며 푸른 꿈에 마음 부풀어서 새마을운동에 앞장섰지 새마을운동 끝이 나고 소값 개값 되고 돼지금 똥금 되어 논 두 마지기 홀랑 날리고 미친 지랄 몇년에 불알만 덜렁 남았지
술만 먹으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도지사도 군수도 면장도 어떤 유지들도 말로는 못 당하지만 술 깨고 나면 말이 없지
태환이 형 우리 형 어제는 농협 빚 독촉에 술만 잔뜩 먹고는 농협도 우리 아니면 저그덜이 뭣 묵고 살겄냐고 몇번이나 동네가 떠나가게 소리치더니 오늘 아침 식전부터 하얀 서리 앉은 머리로 이 집 저 집 인감도장 빌러 다니다 아침밥 먹자마자 하얀 서리밭 밟으며 이자를 본자로 앉히려 빈 들길 혼자 가네.
꽃산 가는 길, 창작과비평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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