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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동호 시인 / 황사(黃砂)바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1.

최동호 시인 / 황사(黃砂)바람

 

 

백지(白紙) 위에

만년필의 갈증이 일어

밤새 넘쳐오는

목마름의 길목을 조이더니

사해(四海) 바다 건너

 

황하(黃河) 강변 모래 바람

날 흐리게 불어

보오얀 산그리매를

우이동(牛耳洞) 큰 바위산 너머로

떠메어 가고

 

깊은 갈증의 밤을

만년필에

맑은 물처럼 담으면

사그럭 거리는 모래 소리에

 

이 한낮

황사바람이 창문을 때리니,

해말간 살결을

잔잔한 햇빛 속에 잠그면

거대한 강물이 소리없이 흐른다.

 

황사바람, 열화당, 1976

 

 


 

 

최동호 시인 / 흐르는 사람

 

 

나는 나무처럼

서 있는데

바람이 나를

불어 갈리야.

 

무수한 빈 손들이

도회의 지붕 위를

걸어가다가

흐르는 가로수를 흔들고 있을리야.

 

외로운 마음이

바람을 굴리며 흐르는데

슬픔이 나뭇잎 사이를 지나가며

나를 찾아낼리야.

 

달아오는 남도(南道) 길은

가슴 속 불볕을 헤치고 가는데

황토(黃土) 흙먼지

내 영혼을 날리고 있을리야.

 

나는 숨어 있는데

바람은 흐르는데

누가 나를

손들어 찾을 수 있을리야.

 

무수한 빈손들이 돌아와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손짓을 하며 도회의 지붕 위를

걸을 수 있을리야.

 

나무 잎파리

바람에 흐르듯 날리는 자가

누구냐. 모든 도회(都會)의 지붕 위에

비가 내리는데

 

아니오,

나무가 말할리야

아니오,

바람이 말할리야

아니오, 아니오

슬픈 사람이 지나갈리야.

 

황사바람, 열화당, 1976

 

 


 

최동호 시인, 평론가

1948년 경기도 수원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1976년 시집 ‘황사바람’ 첫 출간,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현대문학》 추천완료. 이후 ‘시와 시학상 평론상’, ‘편운문학 평론부분 대상’, 만해상 문예부분 대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시집 《황사바람》 《아침책상》 《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공놀이하는 달마》 《불꽃 비단벌레》 《얼음얼굴》 《수원 남문 언덕》 등. 평론집 《시의 해석》 《현대시의 정신사》 《불확정시대의 문학》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 《백석 시 읽기의 즐거움》 등. 현대불교문학상, 고산윤선도문학상, 박두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환태문학상, 편운문학상, 대산문학상(평론부문) 등 수상. 경남대, 경희대, 고려대 교수 역임.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겸 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