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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정권 시인 / 산정묘지(山頂墓地) 7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30.

조정권 시인 / 산정묘지(山頂墓地)  7

 

 

언제 보아도 산정(山頂) 위에는 바람 자고

오랜 세월 지고(至高)한 발길 머물은

구름의 묘비명.

거기 새겨 있는 가사 없는 노래를

내 어찌 전할 수 있으리.

해마다 봄은 오고

봄은 와서 산정(山頂)의 새들에게 고산식물(高山植物)의 풀씨를 전하고,

골짜기와 계곡 눈과 얼음 속에서 삼동(三冬) 겨울을 홀로 견딘

송이 향기를 내려보내 주건만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가.

석빙(石氷) 사이 다시 흘러내리는 냇물과

폭포들이 전해주던 노래하는 법,

혀로서 노래하는 법(法)을.

해마다 산정(山頂)으로 꽃이 찾아와

풀꽃들은 바람에 흠뻑 취해 바람과 동행(同行)하고

햇빛은 나뭇가지와 잎새마다 생긴 일을 나날이 보도하네.

하지만 날개들은 더 먼 해안의 기류를 예감하리.

해안 기슭으로 수천의 물방울이 도착해서 빛을 만재(滿載)하고 있음을.

오, 그대들 빛의 하역자들이여.

본시 그대들의 혀는 말보다도 노래를 위해 태어난 것.

그대들 혀로서 흠뻑 노래부르고 싶지 않은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말을 위하여 그대들 혀는 얼마나 혹사했는가.

권태와 휴식으로 쓸모 없는 팔다리에 피를 다시 돌게 하고

오관(五官)을 다시 운행시키고 싶지 않은가.

봄은 나뭇가지의 오관(五官)을 활동하게 하고

잎새들은 꽃들의 활동을 노래하는데,

그대들, 지상의 거주자들이여, 혀로서 말을 쌓아올리고

의미만을 찾던 동공의 심연.

해마다 봄은 오고

봄은 와서 눈꺼풀을 닫게 하고

그대들의 삶의 나뭇가지마다 진딧물을 번식시키고 있지 않은가.

무수한 현인들이 삶의 개화(開花)를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무수한 철인(哲人)들 또한 성장촉진제를 생각해 왔건만,

오, 까닭도 없이 생겨난 허공에

둥그런 심연, 둥그런 무(無)의 열매.

이미 일찍이 장자(莊子)의 담장 위에 열려 있었던 것.

오, 그대들 어리석은 현인(賢人)들,

서재에 불상을 모신 쇼펜하워, 들길을 거닐며 공자를 가르치던 에머슨, 선방(禪房)에 들어 앉은 레비 스트로스, 니체, 랭보.

저 모든 유럽 탈출자들.

그들 또한 지상을 탈출하지 못하고 결국 지상에 묻히지 않았는가.

오, 그대들, 허공의 탈출자.

동양의 담장 위에서는 무(無)의 성숙한 열매가 보이고

고아한 나뭇가지에는 시인이 빠져 죽은 달이 둥그렇게

걸려 있지 않은가.

그들이 부른 노래는 무(無)의 노래, 가사 없는 노래.

그것은 차라리 도취의 노래가 아니었는가.

 

산정묘지, 민음사, 1991

 

 


 

 

조정권 시인 / 산정묘지(山頂墓地)  8

 

 

저곳은

육신(肉身)이 무거운 자에게는 멀고도 험악한 곳.

또한 가벼운 자에게는

가벼움으로 인해 기슭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물결.

산정(山頂)이여, 햇발치는 드높음,

내게는 언제나 숨가쁨이여.

언제 보아도 산정(山頂)은 머리 위에 고산(高山) 만년설(萬年雪)을

지붕처럼 높이 받들고 있고, 저곳에는

고요한 잠과 열락.

일찍이 우러러 깨친 자들만이

둥그런 우주의 지붕 처마 밑에

노래받이 물통을 받혀 놓고

음악을 듣던 곳.

해마다 여름은 이곳에 찾아와

샘물의 봉인(封印)을 뜯고

서늘한 그늘 밑으로 바람을 밀생(密生)하고

갓 태어난 염소들의 입덮개를 벗겨 준다.

사유하는 이마들이 잔설(殘雪)을 헤치고 찾아내는

보라빛 꽃, 그 속에 감춰진 한 떨기 이슬.

수많은 계절이 찾아와도

여름은 만년설(萬年雪)의 잔설(殘雪)을 녹이지는 못하리.

바람의 정(釘)이 며칠이고 계속 바윗속 얼음의 일각(一角)을

깨뜨리지 못하는 한.

그것들은 불의 혀로서도 타지 않으리.

왜냐하면 불은 이곳에서는 얼어붙는 혀. 기화하는 연기이니까.

오, 고요를 일으키며 잔잔히 파도치는 설풍(雪風)이여.

너희들 설풍(雪風)의 옷자락조차 또 한차례의 고요를 기슭에다 헌사하고 있지 않은가.

오랜 세월 기슭에다 쌓아올린 시간의 고요여.

깨울 수 없는 태허(太虛)의 고요,

거기 깃들어 있는 신(神)의 미소.

그곳에서는 모든 성에 꽃들이 빛을 사방으로 출발시키고 있지 않은가.

빛이 도착하는 지점은 곧 출발의 회귀점.

수많은 성에꽃들은 깊은 심해의 해류식물의

형상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오 기묘함이여.

일찍이 이곳은 지각변동이 있기 전 가장 낮은

심해 한복판이었을까.

그리하여 물은 수백년간 해류식물 사이를 흐르면서

형상들과 친화(親化)하며 제 모습 속으로 흡인하는 본능을 키웠던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물의 꿈은 형상을 취하고 제 혼 속에서 형상을 이루는 것.

자연의 형상과 친화(親化)하는 인간들, 오 그대들,

고산식물(高山植物)처럼 고산지대에서만 사는 이들.

염소치기, 양치기, 목자, 점성술사, 선사(禪師)들.

북극성이 밤하늘을 횡단하는 여행자에게 한 모금의 샘이 되듯

사유하는 이마에 삼각돛을 달고 항해하는 자들.

비와 눈과 얼음과 폭풍의 동행자(同行者), 시인들.

지상으로는 결코 내려가 쉬지 않는

구리발톱의 새와 친화(親化)하는 펜촉을 노래하고,

젖은 날개를 험한 절벽 끝에서 말리며 휴식을 거부하는

강한 영혼들을 노래하라.

지상으로는 결코 내려가 피지 않는 고생초(高生草)들의 밀생지(密生地), 미래의 가인(歌人)들의 거주지,

영혼의 평온한 휴식처.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저 아래 깎아지른 벼랑 밑,

은어들이 산란하는 상류는 한갓 발 밑의 세계.

녹음을 끌어당기는 천길 계곡과

천상(天上)에서 봉우리와 봉우리를 두쪽으로 가르며

떨어지는 장대한 폭포 역시 발밑의 세계.

하지만 바다는 늘 광대무변한 품을 향해 출발하고 있고

능금 껍질의 푸른 띠를 두른 해안으로 난파자와

방랑자를 품에 끌어들여 눈부신 휴식의 잠을 준다.

오, 난파자들이 수평선 너머 잃어버리고 온 바다

놓쳐버린 바다를

수백 마일 밖으로부터 다시 몰고 오는 자들, 수천 마리의, 수억 마리의, 사자 떼의 흰 머리갈기를 타고 몰려오는 파도를

다스리며 친화(親化)해 온 근육들. 오, 보라!

일찍이 율리시즈도 껴안고 꺾으려 했던 바다!

일찍이 율리시즈도 산 채로 사로잡지 못했던 바다!

오, 그대들, 시인들!

수만년 전 율리시즈가 난파한 기슭

거기 쌓여 있는 고요한 모래.

수만년 동안을 바다가 게워 놓은 모래.

거기 묻혀 있는 신(神)들의 글씨 또한 고요하지 아니한가.

인간의 영혼만 남고 신(神)들은 침묵하지 않는가.

 

산정묘지, 민음사, 1991

 

 


 

조정권 시인 (趙鼎權, 1949년~2017년)

1949년 서울에서 출생. 중앙대 영어교육과를 졸업. 19690년 《현대시학》 창간호(3월호)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등이 있음.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문창과 석좌대우교수. 2017년 11월 8일, 68세를 일기로 생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