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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재훈 시인 / 비비디 바비디 부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6.

이재훈 시인 / 비비디 바비디 부

 

 

  내 눈은 카메라를 닮았다.

  노출을 열고

  몇 시간 동안 창밖을 보면

  불빛만 남은 세계.

  칼 맞고 피 흘리는 거룩한 세계.

  지친 육체는 허공에 던지고

  영혼만 건져 내려 밟는다.

 

  고독이 없는 버스를 타고,

  달린다.

  나를 따라오던 노을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피의 냄새를 흘리고 있는 길.

  아무도 없이

  잿빛 살가죽만 덩그마니 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은 이름이 없다.

  그냥 풀잎일 뿐.

  어느 바람일 뿐.

  바람은 불어야 제 몸을 갖는다.

  눈물은 흘려야만 제 몸을 갖는다.

 

  버스에 내 몸을 실어 보낸다.

  당도할 곳은 아름다운 서울.

  나의 메디나,

  시인들의 공화국.

  선데이, 먼데이, 블랙데이 서울.

  파릇파릇한 우주에

  내 몸을 던지고 싶다.

  성난 가시와 붉은 피부를 가진

  장미로 태어나고 싶다.

  비비디 바비디 부.

 

웹진 『시인광장』 2009년 여름호 발표

 

 


 

이재훈 시인

1972년 강원 영월에서 출생. 199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2005)가 있음.  현재 《현대시》 편집장이며, 중앙대와 건양대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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