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휘민 시인 / 껍질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6.

휘민 시인 / 껍질

 

 

  언제나 플러그가 꽂혀 있는 무선청소기

  온종일 전기를 마셔도 정작 실전에선

  일 분도 못 버티고 신음을 토하지

  하루하루 소멸을 삼키는 늙은 고양이

  무선청소기 속엔 시간의 지층이 있지

  몸을 떠난 머리카락들 하나둘 거두어

  똬리 틀 듯 켜켜이 사려놓은 것은

  머리카락 사이를 떠도는 먼지들이라네

  밤이 되면 그 하얀 먼지들 별처럼 빛나지

  검은 머리카락들은 거대한 은하계가 된다네

  무선청소기는 우주를 품은 별들의 자궁

  늙은 고양이가 가르릉 가르릉 신호를 보내면

  온 우주가 운행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지

  윙윙거리던 진동이 멎는 그 순간

  우주의 심연을 뚫고 어린 별들이 깨어난다네

  그런 밤이면 많은 별들이 한쪽으로 쏟아지곤 했지

  사람들은 유성이라 불렀지만 나는 알고 있었네

  그것이 어린 별들을 품었던 둥근 껍질이라는 걸

  오늘 늙은 고양이의 도시엔 불빛들 흥건하고

  멍울진 빛의 무덤가에서 올려다본 하늘엔

  별들의 주검 아슴아슴 반짝이고 있네

  나 이제 목울대 치밀던 뜨거운 욕망을 벗네

  새하얀 먼지 되어 새벽까지 그리운 별들 앞에 서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여름호 발표

 

 


 

휘민 시인

1974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 충주대학교(구 청주과학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에 재학 中.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개신고물상〉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생일 꽃바구니』(서정시학, 2006) 가 있음.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