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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1초에 90번이다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 시를 쓰나
시집 <너무 많은 입> 2005년 창비
천양희 시인 / 흐린 날
생각이 먼저 기슭에 닿는다. 강 한쪽이 어깨를 들어올린다. 下端이 저 아랜가. 문득 갈대숲에서 물떼새들이 달려나온다. 여름이 가는군. 나보다 먼저 바다로 든 길이 중얼거린다. 언제 내가길 하나 가졌던가. 물줄기를 한참 당기면 마음에 들어와 걸리는 수평선. 세상이 평등하기를 저것이 말해준다. 이런 날은 물가에 오래 앉을 수 있겠다. 물에도 길이 있다고 하였으나 물방개, 소금쟁이, 물잠자리들, 물이 좋아 물 먹고 산다는 것일까. 나는 꿈속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물고기들을 보았다. 물의 세계란 그런것일까. 물까지도 한 잔의 물 속에선 흐르지 않는다. 나는 또 자주 쓴풀 몇 포기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 산다는 건 자주 쓴맛을 보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천양희 시인 / 비오는 날
잠실 롯데백화점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괴테를 생각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그토록 사랑한 롯데가 백화점이 되어 있다. 그 백화점에서 바겐세일하는 실크옷 한벌을 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의 승용차 소나타Ⅲ를 타면서 문득 베토벤을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3악장을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소나타가 자동차가 되어 있다. 그 자동차로 강변을 달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여자 고흐의 그림 '슬픔'을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슬픔'이 어느새 내 슬픔이 되어 있다 그 슬픔으로 하루를 견뎠다 비가 오고 있었다.....
천양희 시인 / 외딴 섬
어려운 일은 외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실존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밟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 세상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내가 일어설 때까지는 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딴 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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